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로마 철학자)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육체적 힘이 강한 상태일까? 아니면, 정신력이 강한 것일까? 전부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인 힘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자기 통제력'이 진짜 강함이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다.
우리는 먼저 진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약자를 섬겨야 하는 역설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면, 타인을 억누르고 군림하려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한다.
맹목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약자를 착취하는 것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본능처럼 보인다. 그리고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무력으로 약자를 억압했던 권력은 예외 없이 내부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 비참하게 무너졌다.
즉 약자를 보호하는 집단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명확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는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단단한 것은 외부 조건에 의해 금방 부러지지만, 부드러움은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짓밟고 얻은 강압적인 승리와 권력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시한부일 뿐이다.
반면에 스스로 힘을 절제하고, 그 압도적인 힘으로 타인을 지키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기꺼이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섬김의 리더로서 인정받고, 영속적인 풍요와 번영을 누린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왜 강자가 약자를 섬겨야 하는가?"이다. 그냥 무시하거나, 제압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압도적인 힘으로 약자를 섬기고, 보호해야 되는 이유는 인간이 홀로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강자가 오직 자신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힘을 남용하면, 당장은 모든 것을 쉽게 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자본'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모순을 낳는다. 억압받는 사람들은 겉으로 복종하는 척할 뿐이다. 그들은 속으로 날카로운 칼을 갈며, 강자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반면,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약자를 위해 애쓰는 행동을 보여줄 때, 이 치명적인 모순을 해결해 준다. 또한 약자를 섬길수록, 강인한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응원과 염원의 힘이 모여,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으로 약자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준다. 이것이 섬김의 리더십이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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