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특히 동시대의 문제를 폭로하고 경고해야 한다.' 도리스 레싱의 말이다. 이 책은 청소년 노동의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담아 인터뷰 방식으로 엮은 르포르다 주 작품이다. 믿고 보는 은유 작가이다. 행간에 멈춤이 있는 책.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팠다.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일. 최소한 책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본다.
2014년 봄, 당시 고3이었던 CJ제일제당 현장 실습생 김동준은 장시간 노동과 작업장 내 폭력에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음을 택했다. 힘들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산다. 견뎌라'라고 말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책이다.
1부는 김동준 군을 중심으로 엮여 있다. 엄마가 동준 군을 키워낸 이야기. 이모는 급작스레 발생한 죽음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낸 이야기. 김기배 노무사는 국내 최초로 현장실습생의 자실을 산재로 승인을 받아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아이의 정체성이 현장실습생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죽는 순간 비운의 현장실습생으로 박제되고 만다. (..) 현장 실습생 김 군 혹은 이군이 아니라 오롯한 존재, 저마다 고유한 관계 속에서 경험과 기억을 쌓아갔던 복잡하고 다채로운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다.' (11쪽)
2부는 제2의 김동준 군들 이야기이다. 김동준 군 사건 이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는 현장 실습생 문제가 반복되는 구조를 이야기한다. 노동인권 강사로 활동하는 특성화고 교사 장윤호 씨는 특성화고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와 취업현장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마에스터고와 특성화고 학생들이 전공에 맞춰서 현장실습을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니...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특성화고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안타깝다. 다들 행시 출신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특성화고가 전공에 맞춰서 현장 실습을 나가는 게 안 지켜지는 것이 문제다. 또 나가더라도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노동자의 권리를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실습생이 해야 할 일과 아닌 일에 대해서 과감하게 선을 그을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수업 시간에 '노동인권'이라는 과목은 없고 '성공적인 직업생활'이라는 과목은 있다니.... 학생들은 인권보다는 말 잘 듣고 예절 잘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놀랐던 것은 회사에는 '안전 우수업체'인증 마크가 붙어 있다고 한다. 노동청에서 돈 받고 대충 방문해서 휘 둘러보고 가는 것.. 또 취업률에 따라서 학교에 점수가 매겨지고 지원금을 받는 것. 그러니 아이들을 우선 내보내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언제 어떻게 배우는 걸까.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고 연일 뉴스에서는 고3 학생들의 수능에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진다. 모든 고3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 특성화고 학생들의 어두운 노동환경에 대해 관심을 주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몇 학생들의 죽음을 '불쌍하다' 또는 '보호해야 한다'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무지에 대한 성찰 하는 기회다. 청소년은 당당한 노동의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할 수 없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낮은 지점을 채워야 더 나은 세상이 연결될 수 있다는 작가의 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있다. 흩어진 사고의 기록을 모아놓으면 공통의 문제점이 보인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초반 적응 시스템이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기본적인 노동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욕설과 명령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노출됐다.' (17쪽)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는 체념에 쌓인다.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어쩌겠냐고 하는 것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최소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출판사 돌베개는 지난 6월 출간된 은유 작가의 르포르타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4일 밝혔다. 이 작품은 내년 가을 크랭크인을 목표로 기획 중이며, 2021년 가을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연승 기자, 서울경제. 2019년 11월 4일) >> 내년 가을에 영화화가 된다고 한다. 잊지 말고 봐야겠다.
'이제 나는 극소수가 누리는 부가 다수의 불행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무심히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실라 로보섬)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담은 이야기.. 청소년 노동의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 이 책을 통해서희미한 빛을 만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