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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희 북노마드 Jul 23. 2021

얼굴이 보이는 경제



미국의 포틀랜드, 일본의 고베는 우리의 지역 경제가 참조할 만한 성공적인 사례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 거주하는 사람, 대도시에서 공부하고 경력을 쌓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 타지에서 이주한 사람 등이 따로 또 같이 창조적 일을 하는 곳. 포틀랜드와 고베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포틀랜드와 고베의 로컬 경제의 핵심은 대도시와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데 있다. 알다시피 경제란 적은 비용을 투입해 최대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전지구화,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글로벌 경제는 기획-디자인-마케팅은 대도시 본사에서 하고, 생산은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이루어진다. 이른바 성공 공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은 경제적 생산 주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른바 얼굴 없는 경제. 새벽 배송, 총알 배송, 로켓 배송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정작 자신이 ‘얼굴 없는’ 존재임을 잊고 살아간다. 


로컬 경제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얼굴’이 보인다. 조금은 비싼 가격으로 재료를 매입하더라도 내가 아는 생산자에게 산다. 누가 만들고 유통하는지 아는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고, 그 물건을 누가 소비하는지 아는 경제. 로컬 경제는 그동안 ‘비용’으로만 여겨졌던 재료와 노동자의 ‘존재’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하청’이라는 단어도 찾을 수 없다. 원료(재료)에서 제품/서비스까지. 경제 구조를 이루는 각각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독립’된 기업가로 활동한다. 


로컬 경제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적절한 규모’다. 로컬 하면 시골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로컬은 곧 미드사이즈 도시다. 로컬 경제라고 해서 척박한 환경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미드사이즈의 기준은 당연히 ‘얼굴’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얼굴이 보일 것, 그 분기점에서 최소한의 수익이 발생할 것. 로컬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다. 


스몰 비즈니스, 스몰 브랜딩, 로컬 경제는 ‘도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도시의 ‘크기’가 중요하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나의 ‘얼굴’을 알리는 게 어렵다. 아무리 활동해도 눈에 띨 가능성이 희박하다. 시골 마을은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경제 활동 인구가 적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찾기가 어렵다. 도시보다 띄엄띄엄 인구가 흩어져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려면 운전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포틀랜드, 헬싱키, 빌바오, 멜버른, 고베 등 우리보다 앞서 스몰 비즈니스가 제대로 정착한 곳의 공통점은 ‘얼굴’이 보이는 ‘미드사이즈 도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해외 사례를 따라할 수는 없다. 고베에는 ‘고베에서 얼굴이 보이는 경제를 만드는 모임(神戸から顔の見える経済をつくる会)’이라는 게 있다. 우리로 치면 도쿄에서 살다가 고베라는 미드사이즈 도시를 선택한 사람들의 커뮤니티다. 그들이 고베를 선택한 이유가 솔깃하다. 우선 고베는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이다. 집과 일터를 가까이 두고 살 수도 있다. 도시도 있고 농촌도 있으며 산도 있다. 도시의 직업과 농촌의 직업 등 다양한 직업군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언제든지 경험의 교환이 가능하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고 공항이 있어서 출장과 여행으로 국내외 여러 도시에 갈 때도 편리하다. 무엇보다 대도시의 공항과 터미널, 전철역처럼 복잡하지 않아서 쾌적하다. 대도시보다 운행 횟수는 적지만 이용하는 데 스트레스가 없다. 이들은 말한다. 미드사이즈 도시의 기준은 일의 필요가 생겨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농가에서 도시로 생산물을 배달할 때 차로 30분만 가면 되는 곳이라고. 차로 30분. 곰곰이 생각할 만한 좋은 기준이다. 


고베의 인구는 현재 기준으로 150만 명이라고 한다. 일본 역시 우리처럼 지역의 인구 감소, 과소화 현상, 노령화 현상이 진행되는 대표적인 나라다. 고베의 스몰 비즈니스 사례는 인구 감소를 어떻게 하면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리트머스다. 나는 바이러스가 물러나면 가장 먼저 고베를 찾아 스몰 비즈니스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당신도 같이 동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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