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차피 태어난 인생 이왕 행복하게 잘 살려면 나만의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힘든 고통도 의미만 있다면 견딜만하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를 엄청나게 사랑하셨나 보다. 빅터 프랭클의 상담소에 다 죽어갈 기세로 찾아온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고통을 호소하였다. 끝까지 듣고 난 후 빅터프랭클은 할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은 하였다고 한다.
“만일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면 할머니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야 나처럼 괴로웠겠지요.”
“그럼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겪어야 할 고통을 대신 겪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 말을 듣자마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툴툴 털고 일어나 감사하다며 빅터 프랭클에게 악수를 청하고 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괴롭히던 이별의 고통도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것이 되었다.
이렇게 신통방통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 없고 정답이 없기에 아리송하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행성 중 지구라는 행성에 스치듯이 짧은 순간 사는 우리에게 과연 그럴싸한 의미가 있는지도 사실 의심스럽다. 아니면 인생의 의미는 너무나 거대하고 심오해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찾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아리송한 인생의 의미를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어떻게든 찾아봐야겠다. 나는 이 어렵고 어려운 인생의 의미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소하게 접근해 보려 한다. 즉 ‘의미’란 나만의 서사로 언어로 표현하는 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나를 웃게 하는 것, 설레게 하는 것, 따뜻하게 하는 것, 화나게 하는 것, 두렵게 하는 것 등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다.
나의 소소한 취향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저절로 인생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무슨 내용을 쓸지 계획한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써보려고 한다. 나의 마음에서 조금씩 길어내는 글들이 나, 세상, 그리고 나와 세상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