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책하기 위해 산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 싶다.

by 라온써니

‘한번 사는 인생을 겨우 산책하기 위해 산다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쪼잔한 좋게 말하면 소소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다 나라를 구할 순 없진 않은가? 세상을 이끄는 훌륭한 사람도 있으면 나 같은 소시민도 있어야 하겠지. 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다르지 않을까?


조원희 작가의 ‘중요한 문제’라는 그림책이 있다. 네모 씨의 머리에 500원 동전 크기의 원형탈모가 생겼다. 의사는 탈모는 ‘중요한 문제’라며, 치료를 위해 운동과 뜨거운 목욕을 하지 말라고 했다. 치료를 거듭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늘어나자 네모 씨는 웃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히 해왔던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빠지는 머리카락보다 따뜻한 커피, 초콜릿 한 조각,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 새벽 달리기가 네모 씨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네모씨는 과감하게 머리를 삭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책을 덮은 후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식하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 어느 그림책 작가소개가 ‘산책과 멍 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나 소소해서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의 단면을 자신의 첫 번째 특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 작가의 섬세함과 안목이 부러웠다. 덕분에 나는 독서와 글쓰기보다 어쩌면 산책과 멍 때리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해온 중요한 문제인것이다.


나의 산책 사랑은 직장에서도 유별나다. 지금 근무하는 도서관은 산과 가까워 누구나 산책을 즐긴다. 점심시간에 나가면 인근 직장인과 놀러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장대비가 쏟아질때의 상황은 다르다. 신발과 옷이 다 젖어도 꿋꿋이 밖으로 향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눈, 비, 추위, 더위 등의 궂은 날씨는 사람들을 몰아내어 나는 한적한 산에서 고요함을 느낄수 있어 오히려 호재다. 매일 점심시간에 같은 곳을 돌기 때문에 지루할 것도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을 뽑내는 자연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아름드리 푸르른 나무와 형영색색의 꽃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준다. 걷고 있을 때의 리듬감과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나를 가두었던 생각들도 함께 날려주는 듯하다.


출근을 하지 않는 휴일에도 나의 산책 사랑은 계속된다. 목적 없이 집 근처를 배회한다. 오래된 아파트라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우거져 산책하기 좋다. 가끔은 오전 오후 두 번씩 나가기도 하는 데 같은 거리라도 시간별로 모습이 달라 재미있다. 오전에 장보시는 어머니들, 오후에 하교하는 초등학생들, 밤에는 학원을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중고등학생들 각각 시간별로 거리에서 보여지는 다른 표정과 에너지가 있다. 같은 나무도 자연광에서 보는 것과 밤의 네온 사인에서 비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지나가는 길에 가볍게 구경할 수 있는 올리브영이나 마트에 들어가 기웃거리 는 것은 산책의 또 다른 재미다. 최근에 산이 가까운 발령나면서 계절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동네 산책도 다닐수록 새롭다.

‘산책’을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 1순위에 당당히 올리자 산책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산책은 돈도 안 들고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없으니 가성비가 좋다. 그리고 걸을 힘만 있다면 죽기 직전까지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 사춘기 아이를 돌보는 바쁜 워킹맘인 나도 이 취미생활은 짬짬이 남는 시간에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어느 책에서 산책은 존재의 휴가라고 했다. 물론 멍때리기를 통해 생각을 잠시 멈출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동 반응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을 멈추기란 쉽지 않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나의 정신 활동을 잠시 마비시킬 수 있겠지만 도피성 매체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힘으로 진정한 쉼을 이루고 싶은데 ‘산책’이 나에겐 방법중 하나다.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에 있는 쏠려있던 에너지가 온몸으로 순환하면서 뭉처있던 생각도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의 현재 상태를 거시적인 시각으로 깊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즉 산책은 사색의 다른 이름으로 나답게 살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생각해 보면 산책도 멀쩡한 다리와 잘 보이는 눈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나에겐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 산책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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