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산다

글쓰기를 나의 영원한 친구로 두기 위해

by 라온써니

지금은 독서모임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아이가 어려 집과 직장을 시계 추처럼 다니던 시절 처음 독서 모임이라는 새로운 동선의 추가는 큰 용기였다. 하지만 주저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재미에 빠진 나는 다른 모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과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독서와 글쓰기를 함께하는 모임에 가입하였다. 평소에 일기도 안 쓰던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호불호의 어떤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모임 전에 1000자 이상 독후감을 카페에 올리는 숙제를 하려니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 뿐이었다. 먼저 올린 다른 멤버의 글들을 보니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글쓰기와의 만남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멤버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브런치 입성 후 1년도 되지 않아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출판사와의 첫 미팅 때 지인들은 응원보다는 염려를 해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딸은 사기일 수 있으니 돈을 요구하는지 보고, 이상한 기운이 있으면 얼른 도망 나오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초 ‘사서, 고생’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대형서점과 도서관에 꽂힌 책을 보면 새삼 뿌듯하면서도 가끔은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아무리 좋은 것도 금방 적응되는 이상한 동물이다. 책 출간 후의 일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 출간에 기쁨도 희미해졌다. 책을 쓰면서 블로그나 브런치에 취미로 글을 쓰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한 글쓰기로 초보자가 얼결에 책까지 내면서 책 출간의 기쁨과 동시에 쓰는 과정의 어려움까지 너무 일찍 알게 된 것이다.


출간으로 힘을 너무 뺀 것인지 글쓰기를 계속해야 할지 말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업무, 자녀 양육, 집안일 등을 마치고 몇 시간 안되는 여유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쓸 정도로 글을 사랑하는가가 나에겐 의문이었다. 글쓰기가 돈이 된다면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든 하겠지만 경험을 통해 웬만해서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글쓰기의 다른 쓸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했다. 나에겐 글쓰기가 어떤 존재인지 진지하게 되짚어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실 글을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1도 지장이 없지만, 왠지 글을 놓기에는 아깝고, 계속 쓰자니 힘든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책을 한 권 냈으니 다른 책을 준비하라고 쉽게 말하지만, 내가 이렇게 책을 낸 것이 실력에 비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큰 행운이라는 것, 그리고 책 쓰는 일이 노력에 비해 눈에 보이는 대가가 미미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책 출간은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선물을 주었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책을 내는 세상이라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출판사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또한 책을 읽고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준 선후배들의 응원들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다. 인터넷 서점 후기나 블로그에 써주신 칭찬의 글을 읽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듯했다. 물론 책 서평 이벤트로 써주신 것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모두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특히 한 분의 독자가 기억에 남는다. 그분을 생각하면 절로 글 쓸 힘이 솟구친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셨고 도서관 쪽으로 잠깐 일을 하셨지만, 지금은 다른 일을 하신다고 했다. 아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왔다가 우연히 신간 코너에 꽂힌 ‘사서 고생’ 책을 보고 읽게 되었다고 하셨다. 최근에 책과 멀어졌는데 ‘사서 고생’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다른 책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새로이 생기셨다면서, 이제는 아이 책 빌릴 때 어른 책도 함께 빌린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것 그리고 책날개에 있는 메일 주소를 보고 장문의 따뜻한 글을 써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동스러웠다. 내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될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분에 한없이 고마웠다. 이렇게 책 출간은 눈에 보이는 이득보다는 보이지 않은 무형의 선물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이게 더 큰 내 마음의 자산일지도 모른다.


부수적인 장점으로 책을 냈으니 왠지 글을 잘 쓸 것 같다는 주변의 기대 때문에 조금이라도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점, 그리고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 나갔을 때 책을 냈다고 하면 질문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장점도 있다.


주된 밥벌이 외에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세컨드 분야가 있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돈과 상관없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힘든 일상의 위로가 된다. 글을 쓰려면 일단 나의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므로 삶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끌어내게 된다. 나에 대해서 쓰면서 생각이 좀 더 명확해지고 살아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무리 글쓰기가 좋아도 혼자 글을 꾸준히 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글쓰기 모임을 기웃거리게 되는데 모임에서 글보다 더 큰 인생을 배우게 된다. 글을 그 사람의 내면의 깊은 곳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대화의 깊이가 다른 것 같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글 모임에 나가지만 반대로 글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글쓰기 실력은 유지하고 싶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에서 이석원 작가는 사랑했던 일을 밥벌이로 삼은 죄로 책이 주는 위로와 휴식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일은 다른 데서 찾고 글쓰기를 전처럼 삶의 친구로 두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큰 목적 없이도 글쓰기 자체를 즐기면서 꾸준히 해보자고 항상 생각했지만, 깊숙한 마음 한편에는 이왕하는 거 열심히 해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성격상 한번 마음을 품으면 ‘열심히 병’이 도지는 터라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나를 밀어붙이니까 글쓰기가 싫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석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동안 우왕좌왕하던 내 삶에서 글쓰기의 포지션이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고 나 할까. 갑자기 내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만일 천운이 내려 첫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실력은 없이 헛바람만 들어 전업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을 벌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혼자 글을 쓰는 일은 너무 외로울 것 같다. 그런 고독과 압박을 견디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만일 작가가 된다면 글쓰기 감옥에 갇혀 생계를 위협받거나, 혹은 운 좋게 돈을 잘 번다해도 사랑하는 세컨드 취미인 글쓰기는 너무 괴로운 주된 본업으로 변질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석원 작가의 글 덕분에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 명료해지자 글쓰기와 책 출간 모두 취미로서 나에게 주는 기쁨이 확실하게 다가왔다. 백세시대에 돈과 상관없이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마음과 환경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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