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딸 덕분에 산다.
삐비비빅~ 딸이 학원 끝나고 집에 들어올 무렵 들리는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만 들려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흥분한다. 졸다가도 저절로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얼굴 한가득 웃음이 번진다.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는지.... 우리는 큰소리를 내며 싸우다가도 언제그랬냐는 듯 갑자기 깔깔 웃을 수 있는 사이다.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안 맞으면 어렵기도 하다던데 나는 우리 딸이 제일 편하고 좋다. 딸은 나에 대한 불만을 바로바로 표출해서 가끔은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게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큰 이유다. 반면 대화하면서 서로 의견 조율이 된다는 점도 좋다.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본인의 기준과 고집이 있다. 처음에는 서로 이해가 안 되던 것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면 수긍할 수 있다.
딸과 내가 이런 ‘조율’이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한마디로 서로 ‘통’하는 사이다. (설마 나만의 착각은 아니겠지?ㅎㅎ)물론 내가 오래 살았단 이유로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끔 아니 대체로 아이가 듣기 싫어하면서도 오랜 시간 지난 후에 엄마가 이런 말 했지 않냐고 기억하는 걸 보면 나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딸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생각을 하고 더 지혜로워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춘기에 들이닥치는 이런저런 방황에 나도 함께 휩쓸리고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딸은 기특하게도 여러 고비를 넘기며 흔들린 만큼 단단해졌다. 가끔 내가 성장통을 지켜보고 응원하지 못하고 휩쓸려 버리는 것은 내 안의 해결하지 못한 불안과 나약함 때문이다. 크게 흔들린 만큼 도약하는 딸을 바라보며 덩달아 흔들렸던 나의 마음도 단단해진다. 딸 덕분에 나도 성장한다.
육아를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별의별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대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가장 약한 면이 드러나게 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자식 덕분에 그 어려다는 나를 ‘변화’시킬 힘을 밑바닥부터 끌어올린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나의 단점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자녀 양육에 걸림돌이 되기에 나보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걸림돌을 뽑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자녀에 대한 사랑 덕분에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삶이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보는 별처럼 빛나는 인생의 순간들도 딸 덕분에 얻게 되었다.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 기적처럼 느껴지던 순간. 뒤뚱거리며 걸어와 나에게 찰싹 안길 때 마음이 따뜻해졌던 날들, 세발자전거를 타는 딸을 뛰면서 쫓아가도 힘든지 모르고 그저 행복했던 나의 모습들, 우연히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쳤는데 아이가 까르륵 웃자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테이블을 신나게 두드렸던 순간들 ....
3살 때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재롱잔치를 할 때 아이가 캐릭터 옷을 입고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맞추어 몸을 뒤뚱뒤뚱 흔들기만 했을 뿐인데 나는 마음이 벅차올라 눈물이 흘렀다. 다들 박수 치고 웃는데 나만 울면 이상할 것 같아 생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던 기억이 있다. ‘대견함’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뭉클한 감동이었다.
딸이 초등 1학년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해서 교문 앞까지 데리고 나온다. 딸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이 환해지며 뛰어온다. 교문까지 오르막길이 이어서 지대가 낳은 밑에서 나를 햇살처럼 바라보며 뛰어오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심장이 뛸 정도로 행복한 감정이 들었다.
최근에 시험감독을 하기 위해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 간 적이 있다. 교실 제일 뒤에 서서 시험 보는 것을 감독하는 데 모든 아이들이 내 자식처럼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웠다. 사실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들이 낯설고 가끔은 길거리에 모여있는 반항적인 눈빛의 아이들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의 아이가 커서 중학생이 되자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그 또래의 아이도 사랑스러웠다. 내 아이에 대한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사랑이 번진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부끄럽지만 사회문제에 큰 관심 없는 나도 내 아이가 앞으로 살 곳이라는 생각하면 조금은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인생을 두 번 사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초등학교 도 두 번, 중학도 두 번이다. 시험감독을 하며 칠판 옆에 붙어있는 수업 시간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나의 중학교 시절 시간표, 교탁, 그때의 분위기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기쁨과 아픔이 고스란히 다가오며 마음이 간질간질하였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은 고마운 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그것은 어른으로서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더 나아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며 딸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기분이 들어도 딸을 생각하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박차고 나아가게 된다. 딸을 위해 산다고 제목을 붙였으나 결국 딸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