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으니 산다.

이왕이면 잘살자.

by 라온써니

‘40대 워킹맘 왜 살까?’라는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내가 왜 사는지 되짚어보고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보려는 취지였다. 매일매일 자질구레하게 신경 쓰이게 하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있다가도 글을 쓰기 위해 좀처럼 끼어들 틈 없는 심오한 질문인 ‘나는 왜 살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니 참 좋다.


한번은 ‘왜 살긴 왜 살겠어?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자의건 타의 건 세상에 던져졌으니 이왕이면 잘 살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 것이 문제다. 일단 ‘잘 산다’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다. 좋은 삶은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일 것 같은데... 과연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만족’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싶다. 새롭게 마음에 드는 것이 나타날 때는 좋다고 난리를 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어느새 디폴트 값이 되며 당연한 것이 되고 더 좋은 것, 새로운 것을 바라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많은 것을 얻을수록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욕심을 덜어낼수록 행복해진다고 했나 보다.


하지만 그분 말대로 욕심만 주구장창 버린다고 행복해질까? 욕심을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치자. 물건은 미련이 남아도 눈 꼭 감고 쓰레기통에 냅다 버리면 그만이지만, 내 마음이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 또한 누군가는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마음을 어떻게 해보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란다. 부정적 마음도 긍정적 마음도 살다 보면 생겼다 사라지는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그것을 움켜지려 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라는 거다. 즉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인 메타인지를 발동시켜야 한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쓰라린 아픔은 그냥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고통을 피하려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나를 아프게 하는 감정이 들어도 담담하게 ‘음~~ 지금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고 있군.’이라며 메타인지 어쩌고를 나불거려야 하는 것일까? 그 심오한 경지는 나 같은 범인이 따라잡기에는 영~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마디로 나에게 일어나는 세상사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내 마음에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쿠션을 하나 두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쿠션의 흡수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 같아 그것도 쉽지 않다.


인생을 잘 살려면 욕심을 내려놓던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던 이래저래 자꾸 내려놓으라고 충고하는 책들이 많은데 사실 욕구가 빠진 삶을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나의 욕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 아닐까? 하지만 내가 어떤 것에 욕심을 부리는지는 나 자신도 확실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함정이다. 이것을 잘 알아야 잘 사는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 데 말이다. 나는 과연 무엇에 욕심이 있을까?


나는 휴일에는 멍 때리면서 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쉬고 싶은 욕구도 휴식의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정신줄을 놓고 있다 보면 갑자기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다. 일종의 시간 낭비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자기 계발의 압력이랄까? 물론 그런 압력 때문에 책 출간도 하게 되었고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멍 때리기, 이불과 뒹굴뒹굴하기, 목적 없이 산책하기 등의 시간을 많이 확보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짧은 세상 무엇 하러 즐기지도 못하고 빡세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적당히 쉬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자기 계발하면 참 좋겠지만 매 순간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하는 갈등 속에서 현실에서 ‘적당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다. 좀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을 더 부릴지 아니면 조금은 괴로울지언정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는 욕심을 부릴 것 인지 순간순간 고민된다.


사실 매일 8시간을 직장에 붙들려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시간 좀 빈둥된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 데 내가 왜 지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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