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이 없으면 어때?

'대가 없는 일/김혜지'를 읽고

by 라온써니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꿈을 찾으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것, 삶에 활력을 주는 일을 찾아서 그 길을 향해 나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은 후 열심히 걸어가는 데 과정이 너무 험난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해 주지 못하는 데도 고통을 참으며 그 길을 고집해야 할까? 아니면 현실적인 벽이 높으면 꿈을 포기하는 게 나을까? 힘들게 발견한 나의 꿈을 체념하고 하루하루를 아무렇지 않은 듯 살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소중한 것은 아닐까?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꿈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는 언니의 모습은 존경스럽기만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면서 ‘꿈’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설령 꿈을 찾았다고 해도 어쩌면 부모님 혹은 사회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목표를 꿈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꿈을 좇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언니’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의문을 갖게 했다.


소설 속 기자들이 언니의 진짜 인생을 바라보지 못하고 ‘가난’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린 것도, 마지막 모습으로 언니의 삶을 속단해 버린 것도 어쩌면 자신들이 진정한 꿈을 가져보지 못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힘든 현실에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삶의 기쁨과 환희, 슬픔과 좌절을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제멋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으로 색칠한 색안경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내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낀 티끌만 본다는 말처럼 마냥 기자들을 탓할 수는 없다. 나도 꿈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는 마당에 누굴 비난하겠는가. 나 자신조차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내가 기자처럼 다른 사람을 고정관념을 가지고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삶의 의미나 꿈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은 수시로 튀어나와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하지만 어떤 것에 마음을 뺏겼다가도 금세 싫증 내기도 하고 좋은 마음과 싫은 마음이 동시에 드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나란 인간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았다. 단지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소소한 호불호의 경향성은 희미하게나마 알겠는데, 존재의 목적이나 꿈같은 커다랗고 확실한 무언가는 잡히지 않았다.


목적 없는 삶으로 휘청일 때 문득 인생은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와 우연히 길가에서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봄꽃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큰 목적과 의미는 없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 말이다. 어쩌면 나의 삶의 목적은 일상의 작은 행복 즉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꿈을 찾지 못한 나의 빈약한 변명이나 합리화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쨌든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감정도, 큰 꿈이 없는 나의 성향도 받아들여보려고 한다. 인생은 정답이 없고 내 인생의 의미는 나만이 부여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의미가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라면 ‘합리화’라는 나만의 해석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가 이상한 눈빛을 보내더라도 혹여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꿋꿋이 나만의 합리화를 계속해 보려 한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고정관념과 나는 이래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선으로 일상의 작은 행복을 발판 삼아 울퉁불퉁한 인생 여정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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