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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Jul 11. 2021

칭기스 칸은 중국 사람인가?

중국인의 역사 인식 방법

 중국 역사 중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가 원나라?


하얼빈 출신 선생님과 중국어 수업을 할 때였다. 궁금해서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선생님, 중국 역사 중 가장 영토를 가진 나라는 어떤 나라죠?"
"그건 당연히 원나라죠"


나의 귀를 의심했다. 원나라라면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남송인들을 최하층민으로 삼아 중국을 '식민 지배'한 왕조가 아닌가. 한족인 중국인 선생님은 원나라를 중국 왕조로 인식하고 그래서 당연히 중국 왕조 중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왕조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이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했지만 (정확히는 34년 11개월) 일제강점기를 한국 역사 중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시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를 1945년 광복으로 주권을 되찾기 전 암울했던 '외부세력이 한반도를 지배한 시대'로 기억할 뿐이다.


중국인이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은 한국인과 다르다.



중화민족과 한족은 다르다


시진핑은 '신시대'가 도래했다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주장한다. 여기서 중화민족이 곧 한족은 아니다. 중화민족은 쑨원을 비롯한 중국 근대 정치가들이 만든 개념으로 지금 중국 땅에 살고 있는 한족(92%)과 55개 소수민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여기에 몽고족, 만주족이 포함된다.


여기서 '현재 중국 땅에 살고 있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중국인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의 92%를 차지하는 한족이 세운 국가만이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인식이다.  



한족이 중심이 된 국가는 한, 송, 명나라에 불과하다


중국의 역사는 농경민족인 한족과 유목민족인 북방민족 등 다양한 민족이 섞이는 융합의 역사이다. 당나라에는 귀화한 고구려 출신 장수가 활약했고, 여포는 서역 (지금의 신장) 위그루 지역 출신, 이백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 대륙의 역사를 한 민족의 역사로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왕조 중 한족이 중심이 되어 세운 국가는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에 불과하다. 최초 통일 왕조 진나라는 15년 만에 망했기 때문에 '민족 개념'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400년 이상 지속되었던 한나라를 통해 한족의 개념이 탄생했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수나라, 당나라는 북방민족(선비족)이 중심이 되어 건국한 나라이다. 그리고 원나라는 몽골족, 청나라는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한 나라이다. 원나라 전후 송나라, 명나라가 있었지만 송나라는 문약하여 북방민족(요나라 거란족, 금나라 여진족)과 굴욕적인 외교관계를 맺었고, 명나라는 영락제가 활발한 대외 정복 활동을 벌였지만 끝내 몽골족으로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몽골족을 완전히 제압하여 북방으로 밀어낸 국가는 한족 중심의 명나라가 아닌 만주족(여진족) 중심의 청나라였다.


한족은 농경민족이고 선비족, 몽골족, 만주족 등 북방민족은 유목민족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목민족인 북방민족이 우세한 경우가 많았다. 기마술이 뛰어난 영향도 있고 '이동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생활 방식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당나라, 원나라와 같이 북방민족이 지배했을 때 대외 개방성이 더 두드려졌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서안), 원나라의 수도 대도(북경)는 국제적인 도시였다. 명나라 정화의 원정은 대항해 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청나라는 건륭제까지 만주족의 전통을 유지하며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였지만 이후 급속도로 한화漢化되어 왕조 초반의 역동성을 잃었다.



청나라는 중국 역사


1911년 신해혁명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최초의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반청 무장운동이다. 반청 사상은 국민당이나 공산당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1949년 신중국을 선포한 후 중국 공산당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청나라를 계승했음을 주장한다. 적어도 영토 문제에서만큼은 그렇다.


청나라는 (원나라를 제외하고) 중국 역사 중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동북 3성이 만주족의 고향이고 티베트, 신장 위그루 지역이 중국 역사에 완벽히 편입된 것도 청나라 시절이다. 대만을 거점으로 반청복명 운동을 벌였던 정성공과 그 아들들을 제압하고 대만을 최초로 중국에 편입한 국가도 바로 청나라이다. 중국이 청나라를 계승해야 이 모든 영토에 대한 중국 지배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된다. 만주 벌판을 달렸던 고구려 역사마저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 하려는 동북공정도 이 맥락에서 출발한다.



원나라도 중국 역사, 그럼 칭기스 칸은?


중국인의 역사관에 따르면 원나라는 지금의 중국의 영토를 지배했던 국가였기 때문에 중국 왕조 중 하나이다.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은 기존 중국 왕조의 통치 시스템을 채용했고 유목민족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농경 문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칭기스 칸은 지금 중국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칭기스 칸과 초기 몽골 제국 지도자들은 한족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으며, 한자와 중국어를 쓰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송나라는 정복의 대상일 뿐이었다. 칭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건국하고 수도를 대도(북경)으로 옮긴  '중국식 제도' 채용했을 뿐이다. 몽골족이 한족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한 이유도 있었지만 청나라(268) 비해 원나라(97)중국 대륙을 지배한 기간이 짧은 영향도 있다.


바이두 백과사전에서도 칭기스 칸을 '논쟁적인 인물'로 표현하지 완전한 중국인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铁木真是一位极具争议性的人物,中外各国学者从不同角度对其有不同的研究和探讨。
테무진은 국내외 학자들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연구하고 연구하는 등 논쟁적인 인물이다.


원나라는 중국 역사 중 한부분을 차지하는 왕조이지만. 칭기스 칸은 아직 '확실한 중국인'이 아니다.



칭기스 칸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


중국 인터넷을 보면 칭기스 칸이 중국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중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중화민족의 소수민족인 (내몽고) 몽골족은 조상을 잃는다, 그를 인정하지 않으며 원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니고, 같은 논리로 청나라도 중국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영토 주장의 근거를 잃는다. 그래서 징기스 칸은 '중국인이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반대로 징기스 칸은 지금의 중국 영토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정복 활동 지역이 러시아와 동유럽이지 중국 대륙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뚜렸한 결론이 없는 듯 하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칭기스 칸을 완전히 외국인 취급을  수도 없다. 칭기스 칸이 외국인이라면 몽골은 2 세계대전 일본과 같이 중국을 '침략' 것이다. 이는 현재의 인접 국가인 몽골이 과거 중국을 지배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자부심으로 사는 중국인이 이를 받아드릴리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칭기스 칸을 중국인으로 인정하는  마음이 더 편하다. 내몽고의 몽골족이 중화민족의 소수민족으로 있으니 그렇게 살명해도 그다지 무리로 보이지도 않는다.


칭기스 칸의 중국 국적에 대한 명쾌한 결론아직 내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이 칭기스 칸을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참조

 - 중화민족 (위키피디아)

 - 成吉思汗是中国人吗?

 - 孛儿只斤·铁木真

 - '칭기즈칸'이란 말 쓰지 마! 중국은 왜 예민할까

 - 칭기스 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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