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짝꿍이 되어준 친구에게
중학생 때였던가. 노래방에서 간주 점프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내 인생에도 이 버튼이 있었다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아직 새것 같은 내 외양이 헌 것이 되고 낡아빠지는 미래가 어서 왔으면 했다. 과연 그날이 오기는 할지 막막한 마음이 들었던 탓에 아득한 한숨만 길게 쉬곤 했다. 나의 멜로디는 없고 온통 주변 배경음악만 가득한 간주 같은 시간들을 당장 뛰어넘을 수 있다면, 내 주어진 청춘에 현실이 주눅 드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것은 영롱하기까지 했으므로 이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스스로가 싫어서 학교 쉬는 시간엔 철제 책상에 고개를 박고 엎드려 잠을 자는 척했다. 다가와서 말을 거는 친구들을 모르는 척했고, 그렇게 마음이 텅 비어있는 채로 자라 도통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혼자서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아주 오래 혼자 잘해왔기에 분명 괜찮았는데, 이 생각은 제2외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한 교실에서 자리를 정해 앉을 때 깨졌다. 각 반에서 모인 아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 짝꿍을 만들어 앉았던 것이다. 어쩌면 짝을 하려고 이미 정해놓고 같은 수업을 함께 신청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 교실 안에는 나에게 인사를 해주는 정도의 아이들은 있었지만 나의 옆자리를 채워 앉아줄 친구는 없었다. 혹시나 수업 인원이 짝수라면 혼자 온 아이와 앉으려고 나는 모든 자리가 채워질 때까지 교실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자리에 앉지 않고 장승처럼 홀로 서있는 나를 신경 쓰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기다려 보았지만 두 자리와 한 사람이 우두커니 남았고, 나는 조용히 걸어가 빈자리를 아무렇지 않은 척 채웠다. 내겐 짝꿍이 없다는 걸 곱씹으며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하는 것을 제일로 잘하는 나였으니까 잘하는 일을 그저 평소처럼 하면 될 일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외로웠던 탓에 대학교에 가서만큼은 무어든 함께할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이제는 알고 있지만 그땐 몰랐던 것이 있는데, 바로 우정이든 사랑이든 나 역시 사귀고 싶은 이를 곁에 두어야 한다는 거였다. 서로 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어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거이 채울 수 있을 터였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건네야 좋을지, 친하게 지내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내게 진짜 친구가 생길 리 없었다. 그저 혼자 있다는 이유로 내게 먼저 다가오는 이들만이 내 곁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고 그렇게 속이 빈 우정을 기약했다. 관계에 서툴었던 나는 먼저 손을 내밀어준 선의의 소중함을 몰라봤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옳다는 생각만 내세우기 바빴다. 그렇게 난 대학 시절마저 우정을 맺는 데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자책하고 후회하는 날들로 점철된 날들이었으니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시절에 내 마음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다정함이라는 씨앗을 심은 친구, 솔이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솔은 때마다 화분에 물을 주듯 내게 말을 건네곤 했다. 깊은 곳까지 바싹 말라있던 마음이었으니, 솔이 잊지 않을 정도로만 건네는 말이 충분하게 느껴질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말들은 우정이 생겨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온도와 양분을 가지고 있었다. 만으로 서른네 살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그 말들의 크기를 진정으로 느낀다. 어쩌면 또래보다도 능글맞으면서도 생각보다는 웃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어쩜 다 솔의 따뜻한 말들이 내 속에서 자란 덕분이라고. 가족을 빼고선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커다란 칭찬과 과장된 자랑을 처음으로 건네주고 이따금 다시 주고 또 준 내 친구 솔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내 친구 솔이에게.
.
내가 찍은 사진이 멋지다고,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책을 만드는 곳에서도 만날 수 있어 반갑다고.
처음으로 말해줘서 고마워.
.
너의 오랜 친구 화용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