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photo May 01. 2024

우는 게 어때서

풋살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김혼비 작가님의 에세이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의 영향이 가장 컸다. 우리 세대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분명 운동장은 늘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풋살공은 물론이거니와 축구공은 그저 어디에서 날아올 줄 몰라 잽싸게 피해야만 하는 물체에 불과했더랬다. 그런데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여성 풋살팀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김혼비 작가님의 재치가 돋보이는 이 책은 곧 입소문을 탔고 그 영향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여성 축구 예능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축구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채널에 볼 것이 없어서 그냥 틀어놓고 빨래를 개고 있던 중에 한 장면에서 ‘나도 저거 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장면에서는 여성 선수들이 울고 있었다. 슬프거나 서러워서가 아니라, 진 게 분하다는 이유로.


나는 아마 타고나기로도 울음을 잘 터트리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순간들엔 어느 공통점이 있었다. 다름 아닌 승부에 졌기 때문이었다. 여럿이 모여 쌓아 둔 학종이를 박수를 치며 날려 보내는 게임에서는 승자가 단 한 명이었다. 한 명을 제하고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게임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음에도,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승부에서 지는 순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친구들 앞에서 울보가 되는 것은 더더욱 지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씩씩거리는 상태로 침을 꿀꺽 삼키며 천장을 보곤 했다. 눈을 깜박이지 않고 잠시 멍을 때리면 눈물이 말라 눈과 눈꺼풀 사이로 쏙 들어갔다. 어떤 이유로든 지고 싶지 않아서 패배한 날 오후 집에 돌아가서는 학종이를 날리는 연습을 계속했다. 친구마다 가지고 있는 습관이나 약점을 떠올리며 전략을 세우며 철저히도 이길 방법을 찾아야만 다음 날 등굣길을 가벼운 걸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자기 이기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너무 투명하게 내비쳐보여서 어느 날은 ‘너는 너만 안다.’고 꾸짖는 엄마의 손에 내 머리를 가볍게 콩 맞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분해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여유가 겨우 생겼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하늘을 보며 눈물을 말리는 아이가 숨어 있었다. 그런데, 티브이에서 울고 있는 저 여성 분들은 내가 잘 숨겨둔 아이의 우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뭔가 싶어서 어리둥절했다가, 갑자기 명쾌한 답을 얻었다. 축구장이라는 곳이 최선을 다해 싸운 승부에서 졌을 때만큼은 울음을 허락하는 곳이라는 걸. 엉엉 운다고 해서 타박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상대편 선수들도 와서 어깨를 토닥여주기도 하는 곳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형 경기인 풋살을 하러 간다. 감독님들이 아량을 베풀어주신 덕에 시간이 나면 빈자리가 있는 곳에 추가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다고 울어버리기엔 내 기량이 아기 걸음마 수준이라, 일단 걷고 뛰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고 볼 일이다. 그렇게 걸을 수도, 뛸 수도, 공과 함께 날아다닐 수도 있게 되면 그땐 나의 최선을 보일 수 있게 될까. 무척 그날이 기다려진다. 만약 이기지 못했더라도 개운하게 울고 언젠가의 다음 경기에서는 웃는 표정으로 우는 선수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고 싶다. 더 어릴 때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했다면 더 빨리 멋진 어른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도. 감독님들께서 비수도권 지역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풋살 지도 봉사를 갈 계획도 있다고 하셔서, 내가 누리지 못한 과거를 지금의 아이들은 꼭 누리고 지나갈 수 있도록 봉사에 함께하고 싶다. 일단은 아직 헛방인 내 드리블부터 갈고닦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아물고 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