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시즌2> 스포주의!!
‘은밀하다’는 말을 요즘 잘 쓰던가. 얼마 전 종영한 요리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중식마녀(본명 이문정) 셰프님이 계란 요리를 선보이면서 이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은 있다. 이름하여 ‘은밀한 금란찜’. 계란찜 위에 통계란을 여럿 올려 덮어서 반숙처럼 쪄내는 요리다. 중식마녀 셰프님은 내가 은근히 응원하고 있는 출연자였다. 아쉽게도 셰프님은 해당 라운드에서 멈춰야 했다. ‘은밀한 금란찜’, 그 안에 좀 더 은밀한 무언가가 숨어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았을까. 중식마녀 셰프님이 멈추지 않게 되었을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미 프로그램 편집이 끝난 상황에서 감히 내가 도모해 보기도 했다. 하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다른 두 출연자의 요리에서 가장 돋보인 것이 창의성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은밀한’ ‘개인의’¹ 것을 잘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건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만의 ‘은밀한’ 소재를 잘 고르고, ‘개인의’ 방법으로 잘 배합해 내야만 잘 읽히는 글이 될 테니까.
은밀한 소재는 사실 다른 곳에 있지 않다. 키보드에 쓰려고 하면 머뭇거리게 되는 그 디테일에 있다. ‘이것까지 쓰면 좀 그렇지 않나?’라고 느낄 때 그러한 부분까지 글로 써내면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워도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좀 더 생생하게 맛볼 수 있는 글이 된다. 그래서 한때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용감하고 멋진 쪽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글을 더 잘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는 건 아무래도 가혹하다고 느끼는 쪽이다. 다만, 자신이 괴로워하는 부분에 대해서 희미하게 글을 쓰는 것이 습관으로 남아 자세히 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흐릿한 글쓰기를 하고는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다. 방금 대목에서는 그동안 내 글쓰기에서만큼은 잘 숨겨온 대문자 T적 사고가 아주 드러나 버리고 말았지만, 이것 또한 내 ‘개인의’ ‘은밀한’ 생각이다. 세상엔 수많은 ‘개인의’ 생각이 있으니 걸러 들어주길 바란다.
이쯤에서 내가 앞으로 글로 쓰려고 찜해둔 은밀한 소재들을 한번 나열해 보고자 한다.(글을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막상 그렇게 은밀한 것 같지도 않다. 은밀하게 재밌기란 어려운 일이구나.) 이들을 갑자기 나열하는 은밀한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그렇다. 오늘은 글이 안 써지는 날인 것이다. A4 한 장은 채워서 내야 글방 동료들 앞에서 읽기에 부끄럽지 않기에, 혼자서 음습하게 떠올려보던 기억들을 적어보기로 한다.(제발 떠올라 주기를)
1. 우리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프라다(PRADA)를 시켜달라고. 우리 엄마는 큰딸인 내게 뭐를 시켜달라고 한 것일까~?(요)? (퀴즈임. 뒷면에 정답은 없음.)
2. 안화용은 엊그제 학교에 갔다. 1층에서 날 만난 교무부장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퀴즈임. 상품은 없음.)
3. 안화용은 OO일주라는 사주를 가지고 있다. 흔히들 “ OO 만났네, OO 만났어. 조심해.”라고들 말하는 사주다. 무엇일까~?(요)? (그렇다고 아무랑 싸우진 않음. 겉으로는 잔잔하고 속으로는 그 깊이를 모르고 엄청나게 깊은 겨울 바다 같은 사주임. 원 간섭기에 태어났으면 권문세족의 돈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일을 했을 거라고 함.)
4. 내 이름은 하마터면 화용이 아닌, O용이 될 뻔. 80년대 말, 아들 아닌 딸이 태어나서 붙여질 뻔한 이름. 무엇일까~?(요)? (당시에 유행했던 만화 캐릭터 이름 같은 느낌인데요. 오, A4 한 장 다 채워서 여기서 마무리.)
¹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박은영 셰프님이 자주 쓰는 표현. 스승인 여경래 셰프님의 것을 따라 한 것이 아닌, 박은영 셰프님 스스로 오롯이 생각하여 만든 요리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