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가 향하는 곳

= 만화책 『룩백』 독후감

by bookphoto

내가 덕후였던 적은 종종 있지만,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시도를 안 했던 게 아니다. 내가 했던 모든 덕질은 오타쿠가 되려는 시도였으니까. 그 시절 국민가수 god 팬이 되기로 했을 때나, 중학생 때 꿈에서 날 꽉 안아줬다는 이유로 또래 친구들 몰래 배우 권상우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가장 진지한 오타쿠 희망 시기는 아마 밴드 ‘메이트’를 좋아할 때였을 거다. 홍대 공연장 근처에서 만난 메이트 팬들은 옷을 유독 멋들어지게 잘 입었다. 내 눈엔 <맨 인 블랙>에나 나올 것 같은 영화배우들처럼 보였다. 줄곧 지방에서 자라, 대학도 서울 아닌 곳에서 다니던 나는 그들의 멋짐을 도저히 좇아갈 수가 없었다. 따라가려다 찢어진 가랑이를 겨우 기워야만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맵시 없는 뱁새였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고 있다는 일체감을 더 크게 느꼈다면 좋았을 텐데, 스무 살 남짓의 나는 스스로 만든 초라함을 이기지 못했다. 공연장 앞에서의 마음을 떠올리면 당시의 그 어리숙한 맵시를 또 갖춰 입은 기분이 들고 만다.


덕질이라는 거. 왜 얕을 땐 즐겁다가 깊어지는 순간부터는 슬퍼지려 하는 걸까. 소위 ‘--판’에는 자신보다 더 열렬하고 끈질긴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걸 인정해야만 덕질은 즐거움에 더 가까운 일이 된다. 하지만 난 비겁하게도 도망가기를 택하는 쪽이었다. 진짜 덕후들 앞에서 내 어설픈 덕질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서였다. 내 눈에 나는 가짜 팬, 그들은 진짜 팬이었다. 진짜인 그들은 내 덕질을 끝낼 핑계로 삼기에 좋았다. 여전히 덕질하는 사람들을 오타쿠 따위로 내려보면서, 겉으로는 덕질을 끝낸 척했다. 실로는 그들의 유구히 빛나는 마음을 선망했던 주제에, 그리고 덕질을 진짜 끝내지도 못하고 아직 좋아하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언젠가는 뒤통수로도 보고 있던 쪽에 용기를 내어 내 진심을 말하고 싶었다. 나도 사실 쭉 당신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 앞에서 우뚝 서 있고 싶었다고. 우리로서 나란히, 오래간.


그렇게 매번 내게 번갯불처럼 찾아온 덕질들을 유사한 일련의 과정으로 그만뒀다. ‘웨딩 피치’를 그릴 종합장을 문방구에서 여러 번 사고 버리면서, 즉흥 연주(잼)에 끼지 못하는 내 기타 실력을 밴드 연습 공간에서 숨기면서도 그랬다. 마치 처음부터 그리거나 연주할 생각은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등단 쪽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일기 같은 글만 쓰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지금도 어쩌면 글쓰기를 그만두는 중인지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언젠가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할까 봐 겁이 난다. 그 소심한 마음은 가끔 내 일상을 제 것으로 삼켜버릴 용기를 왕창 먹기도 하니까. 어쩌면 내 진짜 재능은 적기의 주제 파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황설의 끝에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또 덕질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이 모든 기억을 끄집어내어 준 만화책 『룩백』이 좋았다는 것.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을 때만큼 좋았다. 뜬금없이 뭐든 좋아해 버리고 마는 나라서, 어쩌면 순식간에 평행우주에, 양자역학까지도 좋아질지 모르겠다. 겁보인 나는 그냥, 나의 이 좋아하는 마음이 그저 좋은 선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늘상 그래왔듯.


아,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괄호 부분 빼고) 한 문장을 덧붙이자면.

이번 3월에 메이트 복귀 공연 보러 간다. (쏴리질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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