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원형

또는 가족의 원형

by bookphoto

연애가 깊어지면 의아해지곤 했다. 내 부친의 부재는 왜 중요한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인가. 삶에는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평화를 이룩하게 되는 존재도 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나는 슬픔보다 다행을 크게 느꼈다. 집이라는 공간을 사전적 의미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그와의 일이 모두 같이 사라지진 않았다. 이를테면, 다른 가족에게 우리 가족의 형태를 설명해야 할 때였다. 형태를 답하면 이유를 물어왔고, 이유가 될 일대기를 담담히 이야기한 끝엔, 어렵겠다는 시선이 돌아왔다. 씩씩하고 싹싹한 미소로 내 앞의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 같았다. 어렵더라도 그 마음을 사고야 말겠다는 치기나 오기 따위도 생겼다. 차갑고 까다로운 잣대가 무뎌지기만을 기다리며 내 마음을 벼렸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정작 벼려진 건 그냥 나였다. 마음은 사는 게 아니라 쌓는 거여야 했다. 내겐 공을 들여서 쌓아도 쉽지 않은 게 결혼이었겠다. 입시를 치르듯 다른 가족의 일부가 되려 한 나부터도 틀렸었다.


이후의 연애에서는 관계가 깊어지는 조짐이 보일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보는 사람의 눈의 깊이에서, 깊고도 천천히 숨 쉬는 상체의 움직임에서 우리 사이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쩜 지금쯤이라면 미래를 생각할 때가 되었겠구나. 그동안 그가 봐온 나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미래에서 나는 오래간 살림에 서툰 사람일 것이다. 그러다 점차 익숙해지고 서로를 내 사람이라고 느낄 때면 함께 지내는 일에 능수능란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내가 계속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건 비단 우리 아버지 때문에 느끼는 예기불안 따위가 아니다. 나를 집안 보물이라도 되듯 금두꺼비처럼 자랑스럽게 여기는 울 가족 때문이고, 그 덕분이다. 지금의 가족에게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한, 그 투박한 용기를 상대에게 낼 수 있을지 생경해서다. 우리 엄마만큼, 우리 동생만큼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을 평생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행복의 원형을 몰라서가 아니다. 어쩌면 당신이 당신의 가족들을 예시로 보여주기 전부터 말이다. 나는 먼저, 그리고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가족이 뭔지, 가족의 행복이 뭔지. 그저 안타까운 조각 하나가 살다 보니 떨어져 나갔을 뿐.


오늘 같은 날이 있다.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로 이야기를 쓸 용기가 생기는 날 말이다. 당장 눈앞의 일을 쓰는 건 아무래도 꺼리게 된다. 상대에 대한 사랑의 순도가 백 퍼센트가 아닌 상태에서, 영 찝찝한 티끌을 내세우고 싶을까 봐 조심하게 된다. 내 마음에도 걸리고 혹여라도 내 글의 가시에 박혀 아파하는 상대방을 즉각 마주하고 싶지도 않다. 나만의 원칙을 지켜야 글을 공개할 용기도 생긴다. 같은 이유로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겪은 내밀한 일들은 정년 은퇴(또는 명예퇴직) 후에나 적을 수 있을 거다. 쓸 것이 적재된 내 얘깃거리를 두고, 교실에서 훔쳐 온 우리 반 아이들의 것을 쓰고 싶진 않다. 제각각의 삶마다 제1 저자가 한 명씩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아직 이 이야기도 더 세밀한 표현으로 쓰지 못한 걸 보면, 내 것이라 경계 짓기 쉬운 영역에 놓여 꼬여있는 실타래들부터 차근차근, 글로 풀어보는 게 아무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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