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귀갓길에는 동네 비건 빵집에 들러 휘낭시에와 머핀 그리고 아이스 카페라테를 먹고 왔다. 내가 비건은 아니지만, 그냥 그 빵집 디저트는 다 맛있어서 종종 간다. 방문의 이유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빵의 맛 때문만은 아니다. 이왕이면 비건 관련 가게가 잘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도 있다. 물론 맛이 없었으면 비건 가게여도 안 갔을 거다. 무튼 현재로서 나는 비건이 아니다. 비건 빵을 사먹는 날이면 지구를 지키는 데에 일조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꿈 같은 정원을 꾸미기 위해 이미 풀었던 것 같은 퍼즐을 또 맞추는 폰 게임을 하면서 빵집에서 더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일어나야 했다. 배가 암만 고파도 집사가 집에 와야만 끼니를 챙기시는 고양이님, 율무냥이 신경 쓰여서다. 휘낭시에가 지나간 자리에 흩어진 코코넛 가루를 마지막 빵조각으로 쓸어서 입에 담고는, 남은 커피 몇 방울도 쪼르륵 마셨다.
빵집을 나서기 전, 빵집 사장님께 이렇게 감탄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휘낭시에 뭐예요?”(경상도 사투리의 의미로 쓰였지만, 서울 사람들이 쓰는 억양으로)
사장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레밍턴 베리 휘낭시에라고요. 쇼콜라가 들어가 있어요.”
진짜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 미뤄 보아 아무래도 나의 느낌표를 진짜 물음표로만 들으신 듯했다. 감탄이 감탄으로 전해질 수 있게 다시 말씀드렸다.
“진짜 맛있어요! 미쳤어요. (positive, 좋은 쪽으로)”
건네는 말과 함께 미소도 번졌다. 방긋.
든든하게 부른 배를 쓸어내리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직 미소로 물들어있던 마음의 여운 때문인지, 미소가 번졌던 또 다른 때가 떠올랐다. 병원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오후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메인 엘리베이터 쪽에는 이미 사람들이 그득했다. 굳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타고 싶진 않았다. 잠시 기다렸더니 마침 문을 하나 더 열면 있는 작은 엘리베이터에서 이번 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얼른 올라탔더니 내 뒤에서 아기자기한 목소리가 은근히 날 타박했다.
“너무 좁아!”, “사람이 너무 커!!”, “맞아! 답답해!!” “진짜 좁아!! 휴!!”
아이 둘로 추정되는 목소리 뒤로 어쩔 수 없이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크크크. 크킄. 풋. 분명 나한테 하는 소리 같아 앞으로 바짝 당겼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웃길래 절대 무섭지 않을 미소와 순한 눈빛을 장착하고 뒤로 쓰윽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전 손잡이에 아이 둘이 내게 등진 채로 거의 매달려 있었다. 진짜 조그만 아이들이니, 나를 그렇게 느낄 법도 했다. 맞아. 내가 크지. 나 때문에 좁았겠네. 하마터면 여긴 사람이 많이 사는 수도권이니 어디든 사람이 많은 법이야, 같은 진짜 끔찍한 말을 할 뻔도 했는데. 일단의 미소가 엘리베이터 속 공기를 지켰다. 아니, 미소가 다른 미소도 살려뒀다고 해야 하나.
이 글을 쓰는 오늘, 마음이 참 좋다.
이도 저도 아닌, 좋은 글만 써지는 것에 지금의 행복을 실감하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