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는 이야기 같아도, 내 쓰기를 계속하기. 250의 remix처럼.
노트북 모니터 속에 자리한 어느 배우의 얼굴을 60초간 들여다보면서 ‘대단하다, 어떻게 혼자 저렇게 몰입해서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매년 신인배우를 발굴하기 위해 개최하는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참가한 배우의 연기 영상이다. 혼자서 허공에 말을 건넨다. 그리고 소리의 공백이 이야기할 시간을 충분히 비워두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숨을 쉬는 것도 연기의 일부다. 그 장면 밖의 나는 분명 같은 시간대에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람이 꼭 나를 위해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는 지금 무얼 전하려는 걸까. 실체 없는 상대를 카메라 렌즈로 대신해야 하는, 배우라는 이 이상한 일을 그는 왜 그토록 원하는가. 배우가 애쓰는 60초만큼, 그 마음을 읽으려 나 역시 애써본다. 60초를 보는 게 배우 지망생의 평생을 점치는 일인 것만 같다. 나로서는 벅찬 일이다. 매년 약 4,800명의 지원자가 있었고, 그렇게 프로젝트가 진행된 7년 동안의 누적 지원자는 1만 5,733명이었다고 한다. 두 해 이상 여러 번 지원한 사람을 한 명으로 헤아리게 된다면, 실제 참가 인원은 얼마나 될까. 심사위원들은 이미 만났을 수도 있을 얼굴들을 자세히, 여러 번, 들여다봐야 했겠다.
지난주 오프라인 글방에서는, 지지난주에 미리 주어진 ‘내가 가진 묘기’라는 글감으로 글을 써와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했다. 내 나름의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이었으나, 다 써놓고 보니 글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는 서커스에서나 볼 법한 묘기가 아니더라도, 평범해 보이는 우리도 각자의 묘기를 부리며 각개전투를 하며 살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이 글을 퇴고하는 이 시점에서는 앞 글을 고쳐두었지만.) 한숨 돌리고 읽어 보니 ‘나 그동안 진짜 열심히 살았소’,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나는 진짜 짱이었지’, ‘어디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메가패스-)’, 같은 허접한 문장들만 잔뜩 쌓여있었다. 어쩌면 내 속에 느끼하게 적재 돼 있던 자의식 따위가 그동안의 글이 선보인 담백함을 참아주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변명해 본다만. 진짜 별로긴 했다. 정말 소리 내서 읽는 게 싫어서 간신 같은 목소리로 빠르게 읽어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그렇게 싫지 않다. 좀 마음에 들기도 한다.)
수년째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을 무명 배우 지망생의 생활에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나만 특별하게 가진 장면이라고 생각해 용기를 내어 세상에 꺼내보였지만, 이미 ‘나’보다 일찍 용기를 낸 ‘용자’가 있다는 점에서다. 오로지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땐 이 일을 이미 사랑하고 있다. 그럼, 방법은 하나다. 계속하는 것. 넘어져도 그만두지 않는 것. 웃으면서 다시 일어나는 것. 상처 위 모래알을 툴툴 터는 여유를 갖는 것. 영 따갑다면 상처 위에 침도 쓱 바르며 스스로를 달래 본다. 더 잘하고 싶어서 그만두고 싶어지는 건, 진짜 좋아하고 있다는 신호니까. 없던 것으로 쌤쌤, 퉁치고 싶던 지난주의 글도 ‘37(살) Remix’ ver.(버전)으로 요리조리 손보면 되는 거다. “삐끼삐끼욥.”(무리수 DJ 효과음: 글 무사히 다 써서 신나는 마음에 넣어보았는데 양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