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기2 妙技
발음 [ 묘ː기 ]
명사
1. 교묘한 기술과 재주. [예문] | 묘기를 발휘하다. | 묘기를 부리다. | 곡예단이 공중 묘기를 보였다. | 그는 접시 돌리는 묘기를 할 줄 안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지난 글방 모임에서 받아온 글감은 내가 가진 묘기(개인기)였다.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묘기를 내가 가지고 있을 턱이 있나 싶어서 일주일 동안 자주 생각에 빠져야 했다. 이걸 묘기라고 할 수 있나, 이게 안 되면 저걸 묘기라고 해야 하나. 곰곰이 고민하다가, 글방 참여 시간을 코앞에 두고서야 묘기의 뜻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떠올랐다. 단 세 명만을 위한 팬터마임과 연극을 했던 그때가.
내가 가진 묘기는 바로 투명 인간으로 가득한 교실에서 수업을 시연하는 것이다. 임용고사를 무사히 치른 교사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 어쩌면 흔한 개인기다. 그걸 진짜로 본 사람은 임용고사 합격의 당락을 결정짓는 수업 전문 교사(예. 수석교사 등), 장학사, 교장, 교감급의 교사 출신에 한정된다. (어느 시 교육청에서는 학부모, 학부형이 함께 수업을 평가한다고도 한다) 나는 대구에서도 임용되어 근무하다가, 지역 이동을 위해 경기도로 또 임용을 치른 경우라서 투명 학생을 얼마나 실감 나고도 진정성 있게 가르치는지 평가받는 것을 두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시험 형식에 대해 들었을 땐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학생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학생의 대답을 들었다손 치고 내가 그 대답을 다른 학생들에게 전하며 피드백까지 전해주는 것이 그야말로 민망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이상, 나의 투명한 학생들은 나를 언제고 벌거벗은 임금님 취급을 할지도 몰랐다. 진짜 우리가 보인다고? 웃기시네. 떨어질 듯. ㅋㅋㅋㅋ. 곧 울겠네. 저 샌님 진짜 웃기지 않냐. 같은 말들로. 급격히 초조해진 기색을 평가위원들에게 그만 탄로가 나버렸다면, 그 게임은 끝이다. 배짱 키워서 내년에 다시 오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수업 평가만 안정적으로 치르면 합격할 수 있는 상황의 이야기다. 취업의 성패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너무 어려운 시절이다. 온전히 공부만 할 수 없는 취준생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첫 번째 임용 때에는 그 어색함을 이기지 못했다. 수업은 무난하게 했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투명 학생만을 대상으로 수업해야 했는데, 이상하게 순간 이 평가 방식에 대한 반발심이 크게 드는 거다. 나만 바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수업을 평가하고 있는 어르신 평가위원 선생님 옆에 다가가서 감히 말을 걸었다.
“우리 토마스는 선생님 수업 잘 따라오고 있나요? 한국어 배운 지 얼마 안 되어서 수업이 어려우면 언제든지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하기로 해요.”
이런 식의 말이었을 거다. 나 빼고 거기에 있는 세 명의 선생님께서는 아주 잠시 아연실색하셨지만 금세 표정을 단정히 정리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해가 2012년이었으니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무례했던 거다. 하루 종일 수업 실연을 평가해야 했던 분들께 폐를 끼친 것 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죄송한 마음이 연신 든다. 지금은 임용고사를 1차, 2차에 걸쳐 치르지만, 2012년에는 3차까지 치르던 때였다. 시험 기간만 거의 석 달이었는데, 그 고생을 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이상한 수를 던져버린 거다. 다행히도 그 기행을 빼놓고는 시험장 안 교실 곳곳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멀쩡한 교사일 수 있음을 미리 증명한 덕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평가 항목에서 점수를 잘 받아둔 덕인지 무사히 합격은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에 나는 지역 이동을 위해 다시 수업 실연을 치르게 된다. 1차 시험(교육과정 평가, 논술)을 정말 겨우겨우 붙은 상태였다. 나중에 결과만으로 따져보니 2차 시험(영어 면접, 영어 수업 실연, 면접, 집단 토의, 교과수업 실연)에서 100점 만점에 98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지 않았으면 떨어졌을 상황이었다. 이미 난 교사로 뽑혔는데 지역교육청 간 1:1 교사 교환에 실패해서 임용을 다시 치르는 거라, 사실 정말 치기 싫었다. 하지만 이왕 치는 거라면 점수를 잘 받고 싶었다. 왜냐. 그래도 내가 (당시에는) 6년 차 교산데, 그래도 점수는 잘 받아야지, 했던 거다. 그해에는 6학년 담임교사로 재직하면서 퇴근 후에는 2차 스터디 모임을 2개를 했다. 경기도 외진 곳에 발령 나면 운전도 해야 하니, 새벽 다섯 시마다 운전면허 도로 주행 연수도 들었다.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과 업무를 동시에 하며 칼퇴근을 한 후엔 독서실 가는 “길”에서 김밥을 씹어 먹었다. 그렇게 해야만 시간이 났다. 다른 수험생들은 내가 일하는 동안 하루 종일 공부하고 또 공부했을 거였으니까.
한계에 다다른 상태로 일 년 내내 저글링을 하는 기분이었다. 당장 끝났으면 좋겠다가도, 그래도 지금까지 돌린 게 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아까웠다. 사실 그때 내가 저글링 하고 있었던 건 수험 생활의 시작과 끝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분투하고 있는 내가 저글링 하면서 더욱 가까워지면, 그 지독했던 관계의 저글링도 끝날 거라고 믿었다. 스스로와 상대방을 다독이기 위한 나만의 묘기였던 거다. 2017년의 시험도 무사히 막을 내렸다. 난생 해본 적도 없는 승무원처럼 머리 올리는 법을 유튜브로 몇 날 밤을 연습해 두고. 전날까지 학교 방학 당번 근무를 하다가 늦은 밤에서야 대구에서 수원까지 당도해서 시험을 치르는 3일 동안 입을 옷 세 벌의 구겨진 부분을 다시금 다려두고. 대기장 교탁 앞, 생각보다는 빠른 순번을 뽑아 하루 종일 시험장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기쁨을 다른 지원자들에게 표정으로 티 내며 지정 대기석에 앉고. 이마에 자국이 남지 않게 머리를 살며시 손등에 댄 상태로 책상에 엎드려서는 광대를 올리며 웃는 표정을 지어 심사장 안에서의 자연스러운 미소를 미리 만들고. 또각또각하는 소리가 나지 않게 부직포 따위를 붙여 놓은 신발을 신고 만 5년간 진짜 수업을 하며 갈고닦은 내 개인기들을 선보이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내 우물 안에서의 묘기다. 각개전투하고 있을 사람들의 것만큼 희귀한 것은 아니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분명 묘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