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나이를 먹는다는 것

by bookphoto

곧 있으면 생일이다. 연말이라 그냥 있어도 한 살 먹는데, 생일까지 껴서 만으로 한 살 또 먹는 것 같아 괜히 억울한 심경이다. 떡국은 잘 챙겨 먹지도 않는데. 마치 두 그릇 먹은 것마냥.


다음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면 내 아이디를 보게 되고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영문 숫자 조합의 아이디에 들어간 숫자가 1318이기 때문이다. 열세 살 때 처음 만든 아이디였다. 그때의 난 내가 1318세대, 곧 방랑 13세와 낭랑 18세 사이에서 영원히 머물 줄로만 알았다. 33세를 지나는 지금을 기념해서 3338로 아이디를 바꿔야 되나 싶다가도, 이젠 서른여덟도 금방 왔다 지나갈 나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디를 바꾼다는 건 생각만 해보고 넘겼다. 애초에 아이디에 정체성을 넣는 게 아니었는데.


예전엔 나이를 먹는 게 즐거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푹푹 한숨만 나오는 일이 되어버렸다.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가 있는 난, 커다란 킹 사이즈 침대 위 엄마 옆에 누워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엄마 딸 벌써 삼땡이오.”

“그래요, 딸. 그대도 곧 사십이고 오십이오.”

연말 시상식을 보며 엄마와 만담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서른 넷이 코앞이다.


나이가 뭐라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넘기기엔 요즘 노화를 온 얼굴로 맞는 중이다. 우선 주름. 웃고 나면 웃음길이 웃음을 따라 나 있다. 더 어릴 땐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다시 합쳐지곤 했는데 요즘 그 길은 상시 개통이다. 주름선을 따라 손으로 문질러주면 약간은 길이 희미해지긴 한다만. 그리고 기억력. 도전!골든벨, 1대100, 우리말나들이 같은 퀴즈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나의 낙이었는데. 이젠 순발력 있게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어려워졌다. 수업 중 적재적소의 설명을 하려면 그 단어가 필요한데, 필요한 단어를 못 찾아서 다시 그 단어에 대한 스피드 퀴즈를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 세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차마 기억해내지 못한 단어들이 너무나 많다. 에휴, 세월. 마지막으로 흰 머리. 어릴 적 엄마의 흰 머리가 자주 출몰하던 딱 그 부분에 수맥을 짚은 듯 손가락을 척 갖다 대고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들추면 꼬마 흰머리가 쑤욱 고개를 내민다. 잡초 같은 흰머리 같으니라고. 뽑아도 또 나는 게 흰머리다. 뭐라도 나면 감사한 건지. 모발모발. 아아아. 세워얼.


오늘은 직장 동료와 함께 집에서 와인 파티를 하기로 했다. 오늘도 나이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겠지. 아직 먹을 나이는 가득인데, 나이를 먹을 때마다 이렇게 슬픈 곡조로 타령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쯤부터 나이를 먹는 것에 태연해질까. 나는 사실 그날이 기다려진다. 나이는 먹을수록 좋다던 인생 언니들의 말이 나에게도 적용될지. 나는 어떤 중년으로, 어떤 노년으로 늙어가게 될지 불안하면서도 기대되는 마음에, 아주 잠시 나이를 먹는 것에 설레기도 했다. 나이야 가라. 나이아가라. 말도 안 되는 말장난으로 글을 맺어본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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