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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의 책놀이터 Dec 28. 2015

[서평] 우리가 몰랐던 재정의 비밀을 들여다보자

오건호,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2010, 레디앙

요즘 담배값 인상의 효과에 대한 평가 기사가 좀 나왔더군요. 지난해 이맘때쯤, 담배값 인상을 앞두고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소비자들이 담배 사재기를 벌이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졌었지요. 바로 올해인 2015년부터 담배값이 두배 뛰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전세계적인 담배의 흉작이나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한 가격인상은 아니었습니다. 담배가격에 포함된 세금이 절대적으로 인상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담배값 인상에 찬성 혹은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담배소비를 줄이려면 가격인상이 효과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해외의 사례들 들며 어느나라에서는 담배값이 1만원 정도는 한다며 우리도 그 정도 선으로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담배값 인상이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간접세 인상이 명백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담배소비가 감소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며 오히려 간접세 인상 효과로 서민과 저소득층의 부담만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12월 27일 나온 한겨레 기사 '담배값 인상 1년... 세수 4조 늘었는데 금연은?'1)이나 12월 28일 나온 아시아경제 기사 '담배값 인상 1년, 금연효과 없고 세수만 4조 늘어'2)를 같이 보시지요. 두 기사 모두 납세자연맹의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려서 나라살림에 얼마나 보탬이 되었을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올해 담배세수는 11조 489억원으로 작년에 거둔 6조 7427억원에 비해 64퍼센트(4조 3064억원)이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14년 9월 담배값 인상을 발표했던 정부의 세수증가예측치 2조 7800억원에 비해서도 무려 160퍼센트나 높은 결과지요.


한 편, 정부와 담배값 인상 찬성론자들이 주장한 금연효과는 어느 정도나 됐을까요? 담배값이 오른 15년 1월와 2월에는 전년 동기대비 각각 48.5퍼센트, 33.3퍼센트의 담배소비 감소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3월부터 감소효과가 약해지기 시작하며 전년 동기대비 10월과 11월에는 18.9퍼센트, 19.4퍼센트로 둔화가 뚜렷해지지요. 성인남성 흡연율은 보면 15년 7월 조사된 35퍼센트는 전년 동기결과인 40.8퍼센트에 비해 5.8퍼센트 감소했을 뿐입니다. 담배값 인상만 해도 당장 흡연율 8퍼센트는 감소할 거라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큰소리가 허언이었던 것입니다. 국민건강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던 담배값 인상으로 증가한 세수 중 금연사업에 정부가 증액한 금액은 고작 1400억원이었습니다. 애초 정부가 예측한 세수증가분 2조 7800억원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럼 95퍼센트의 증가분은요?


이렇듯 대의와 명분이 그럴 듯 해도 실질적인 목적은 따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국민적인 저항이 큰 세금문제가 그렇지요.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정권도 연말정산금액 축소방침에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자 곧바로 정책을 철회하는 작태를 작년에 보지 않았습니까? 조세저항이 크고 한 번 주었던 혜택과 복지를 축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럴듯한 대의와 명분을 내세워서 이를 회피하고 뒤로는 자신들의 정책의지를 관철시키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합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를 들어 국민을 무시한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정책들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것이 현실이지요. 1년만에 그 진실이 드러난 담배세의 경우가 아주 적절한 사례가 되어 주겠습니다.


이쯤되면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나라살림을 어떻게 하길래 돈이 없어서 서민들 담배값, 소주값으로 세금을 거둬가는지. 우리는 쉽게 사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비리, 방산비리 같이 나라돈이 허투루 쓰여서 그렇다고 치부하고 맙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려면 어렵습니다. 자료도 거의 없고 국가재정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집행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추경예산 같은 말도 그런 것이 있는가 보다 하고 말지 이것이 무슨 예산이고 어떤 성격의 재정인지 설명해주는 곳은 잘 없습니다. 즉, 대한민국의 국가재정은 납세자인 시민에게 두꺼운 베일을 뒤집어쓴 여인과도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납세자의 권리로서 베일 아래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굴러가는지 확인을 해봐야 겠다고 마음 먹은 독자님이 계시다면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진보의 눈으로 국가재정 들여다보기>(이하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오건호 박사의 과거 정치적 행보나 책제목 때문에 이념적 저항이 있으시더라도 권해보고 싶은 이유는 '국가재정'이란 주제로 일반인이 읽을 수 있게 출간된 책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의 수준에서 대한민국 재정의 이해를 목표로 한다면 두 권 정도의 책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와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입니다. 전자는 중앙정부의 재정에 관해, 후자는 지자체의 재정에 관해 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이지요. 이데올로기적 편파만 제어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재정에 관해 일반인으로서는 상당한 식견을 갖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는 총5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 국가재정 입문을 위한 기본기 다지기
2부 대한민국 국가재정 운용체계 이해하기
3부 한국조세, 문제와 해법
4부 국가재정을 둘러싼 주요 논점
5부 결론: 대한민국 금고 재설계 하기


각 챕터가 꽤나 전문적인 지식들로 촘촘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그림이나 자료들을 참고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지요. 이런 책은 쓰는 이도 힘들지만 읽는 이도 만만치 않게 힘이 듭니다. 그만큼 국가재정의 비밀스런 내면을 훑어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4부와 5부는 국가재정에 대한 제언들과 저자의 주장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생략하고 간단히 현재 재정의 이해와 파악에 주안점을 둔 1~3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부에서는 대한민국 재정의 구조에 대한 개괄을 합니다.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으로 구성된 재정의 구조부터 시작하여 각 재정의 역할에 대한 소개가 이뤄집니다. 특히 우리가 제일 모르는, 하지만 덩어리도 크고 역할도 많은 '기금'에 대한 소개가 많지요.


2부에서는 재정이 어떤 의사결정구조에 의해 배분되고 어떤 사업들에 집행이 되는지, 어떤 재정운용계획이 진행되는지, 그리고 앞의 과정을 통해 어느 예산들이 증가하고 감소하는지에 대한 프로세스를 소개합니다. 국가재정전략회의, 중기재정운용계획, Top-down 예산편성 등등 일반인들이 처음듣는 단어가 튀어나와 당황스럽지만 천천히 읽어보시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3부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조세제도 현황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런 조세 수취제도가 가지는 문제점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국세와 지방세, 보통세와 목적세 같은 기본적인 명칭과 구분을 정의합니다. 그리고 담배값 인상에서 논란이 되었던 간접세와 직접세의 비중 문제, 법인세 인하의 효과 등에 대해 OECD 평균과의 비교 분석을 해놓았지요.


앞서 담배값 인상을 통한 간접세 증세의 문제를 말씀드렸기 때문에 직접세와 간접세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조금 소개해 보려 합니다. 


필자가 조세와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한국 조세 제도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높은 간접세"라고 대답한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정답인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한국의 간접세 비중은 그리 높은 것이 아니다. <표13>을 보면 1970년에는 간접세 비중이 국세 기준으로 61.5%, 조세(국세+지방세) 기준으로 56.5%로 직접세에 비해 더 높았다. 그러나 이후 비중은 점차 낮아져 2008년에는 국세 기준 49.0%, 조세 기준 41.8%로 오히려 직접세보다 낮아졌다.
- 오건호,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2010, 레디앙, 158~159pp.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나의 생각과 취향이 내린 결론과 객관적 자료와 수치가 말하는 진실은 이처럼 동떨어져 있는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간접세가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세수확대라는 실제 목적을 숨기려는 꼼수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무엇을 간접세로 볼 것인가의 문제를 검토하면 다시 위의 평가는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재정의 문제는 저자 한 사람이나 전문가 몇몇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보다 많은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국가재정과 조세문제를 토론하고 검토하는 기구나 그런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2016년도 대한민국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정답은 386조 3997억원입니다. 지난 12월 3일에 날림으로 통과됐지요. 2015년 대한민국 GDP 1676조 2000억원에 비교해 보자면 약 23퍼센트 정도 되는 금액이지요. 대한민국에서 벌어들인 소득 중 적지않은 비중이 정부에 의해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큰 덩어리의 돈을 쓸 수 있는 주체는 아마 정부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의 조세수취와 재정운용은 시민들의 삶과 바로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경제정책과 복지정책들이 바로 이런 연장선상에서 기획되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들이 국가재정을 통해 이뤄지기도, 미뤄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대통령의 선심성 사업이나 어느 국회의원의 지역구 예산 따오기처럼 그저 누가 떠먹여주는 밥을 수동적으로 받아먹는 시대는 종식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납세자이자 주권자인 시민 스스로가 재정의 편성과 운용을 감시하고 협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당장은 어려울 것입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시도의 첫 걸음을 떼는데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듯 합니다.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책 #서평


1) 한겨레신문 12월 27일 기사, 원문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23606.html

2) 아시아경제신문 12월 28일 기사, 원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1227204536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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