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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의 책놀이터 Jan 29. 2016

[서평] 도대체 그들은 왜 기꺼이 '순교'하는가?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 한겨레출판사, 2015

영화 <고지전>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영화배우 신하균 씨와 고수 씨가 열연한 작품이었지요. 한국전쟁 당시 애록고지를 두고 인민군과 국군이 벌인 일진일퇴의 전투를 그린 전쟁영화입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종전이던 휴전이던간에요. 고지 하나를 두고 뺏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의미한 살상을 일단 피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루한 휴전협상은 길어져만 가고, 그 사이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맙니다. 병사들은 휴전 소식을 듣고 기뻐했지만 휴전 개시 시각까지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지휘부는 휴전의 코 앞에서 돌격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 때 김승수 씨가 보여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은 참 인상깊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전쟁에게 잡아먹히고 말 줄 알았다는 듯한 그 표정 말입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전쟁이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는 땅이 어딜까요? 한 몇 년 전에는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었고,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미국에 의한 아프간 침공 및 이라크 침공이 있었지요. 국제적인 분쟁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때로는 국지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중동만큼 유혈이 낭자한 곳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각종 테러와 무장단체들의 학살 소식이 국제사회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래도 중동은 화약고라는 별명이 있었지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열풍 이후에도 중동의 정세는 안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무대를 옮겨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비롯 파리 테러 사건 등 세계 곳곳을 상대로 테러가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연속해서 발생하는 잔인한 테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혹 <고지전>의 김승수 씨처럼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하셨는지요?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해서 대다수의 전투에 승리했지만 그가 말한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패배한 듯 보입니다. 미군의 주력은 이라크에서 철수했고 민주화의 열풍이 아랍권을 휩쓸었지만 정작 테러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세계인은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의 공포로 불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바로 한겨레신문 정의길 국제전문기자가 쓴 <이슬람 전사의 탄생>(부제: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입니다. 이 책은 현대 이슬람 무장단체의 등장과 사상적 배경, 무력투쟁과 테러의 역사 등을 일목요연한 흐름으로 정리한 현대 중동 역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와하비즘, 탈레반, 오사마 빈 라덴, IS 등등 많이 들어는 봤지만 그게 정작 무슨 의미인지, 뭘하는 건지 몰랐던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과 종교관, 문화적 배경, 관습, 역사적 배경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중동의 현대 중동의 정세는 이해하는데 있어 <이슬람 전사의 탄생>만한 교양서는 없을 듯 합니다. 이전에 소개해 드린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가 통시대적인 중동이해를 돕는다면, <이슬람 전사의 탄생>은 현대의 중동정세를 보다 자세히 이해하는데 효과적입니다.


현대 중동의 역사, 특히 분쟁과 무력투쟁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소련군에 맞서는 무장게릴라 세력이 조직됐고, 미국과 파키스탄이 이들에게 무기 등을 지원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무기들로 무장한 게릴라 세력들이 미국을 공격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줄은 그 땐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요. 그 과정에서 성전聖戰(지하드)을 부르짖는 과격파 이슬람세력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은 자원병으로서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데 그 중에는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이미 9·11테러의 조짐은 이 때부터 감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명성을 얻은 오사마 빈 라덴이 결성한 테러단체가 바로 알 카에다로서 이들이 바로 9·11테러를 주도하게 되지요. 알 카에다를 소탕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려는 시도는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전으로 번지게 되지만 독자님도 알다시피 빈 라덴의 체포는 수포로 돌아가고, 이라크 침공 후에 명분으로 걸었던 대량살상무기는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무주공산이 된 이라크는 시아파 정권에게 이양되지만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와 쿠르드족 같은 소수민족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요. 그러는 사이 익숙한 이름인 IS가 이라크에 터를 잡더니 내전이 벌어진 시리아동부까지 점거하게 된 상황이지요.


간단히 말씀드린 현대 중동의 역사는 우리가 중동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각 국면에서 벌어진 상황과 각국의 선택에서 도출되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가 생략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소련은 왜 아프간을 침공했는가? 왜 아프간 사람도 아닌 무슬림들이 자원병으로서 아프간 전쟁에 참가했는가?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 없는 이라크를 왜 침공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천천히 읽어보시며 독자들께서 판단해 보심을 권유해 드립니다. 그런 다음이라면 뉴스에서 나오는 중동 관련 뉴스가 훨씬 수월하게 이해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동은 '쿠웨이트 박' 같은 인물로 대변되는,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중동의 오일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많은 한국노동자들이 중동의 열사를 견디며 건설신화를 써갔죠. 그 당시의 달러수입이 우리 경제의 발전에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한 편, 그 당시 중동의 두 강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죠. 바로 이란-이라크 전쟁(80년~88년)입니다. (미국이 이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지원한 것 역시 아이러니지요) 또 한 편에서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진행중이었구요. 이처럼 우리 노동자들이 중동에서 땀흘리고 있던 그 때 또다른 중동의 한 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대면하고 있는 테러들은 이미 그 당시부터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동특수만 기억할 뿐, 가족과 고향을 잃고, 종교적으로 탄압받아 폭탄으로 변해가던 그들의 증오심은 잊고 지냈습니다.


자, 제목의 질문을 다시 옮겨봅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기꺼이 순교를 감수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마치 영화 <사일런트 힐>에 등장하는 좀비들처럼 의식이 없고 공포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라서요? 아닐 겁니다. 그들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이고, 가족과 친구가 있고,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일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테러나 자폭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좀비가 아니니까요.


다만 우리의 관점이나 서방 강대국들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려 하면 안됩니다. 이미 승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방의 관점에서 중동을 바라본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뿐더러 이미 상당부분이 왜곡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네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영화 <암살>의 주인공들을 일본 우익이 바라보는 관점과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서방국가나 우리나라의 입장에서야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지만 그들의 안에서는 지하드를 수행한 훌륭한 인물로 기억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바로 이렇습니다. 힘으로, 즉 공습이나 지상군 투입 같은 방식으로는 극단주의 무슬림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제거한다는 식의 해법은 또다른 보복과 공격을 부를 뿐이었습니다. 더욱 극단적인 무장세력이 더 큰 테러를 저지르지요. 심지어 이제는 내전으로 정신없는 중동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일정지역을 점거하고 국가를 참칭하는 지경에 이르른 것을 보자면 이런 결론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총을 드는 것 자체를 막는 해법이 필요합니다. 정치와 외교를 통한 대화와 협상으로 그들이 분노와 증오의 무기를 들지 않도록 설득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파리테러사건 이후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난리를 쳤었지요. 세계최강의 천조국 군대가 지닌 최첨단 무기들과 정보망도 그들의 테러를 막지 못했는데 고작 국내의 법률이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힘으로 무슬림들을 억누르려 했던 국가들이 어떻게 됐는지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결국 88년에 발을 빼고 그 이듬해 해체돼 버렸죠. 미국은 이라크라는 늪에 빠졌다가 나라살림이 거덜나서 고생 중이구요. 정치와 외교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길지만 안정적인 해법을 선택하지 않은채 즉각적이고 전시효과가 큰 선택을 한 경우 어떻게 되는지는 <이슬람 전사의 탄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멍청하게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평화를 바랬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먼 중동의 이야기라서 조금 재미가 없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중동과 그곳에 개입하는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열강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작 100여년 전 한반도의 정세와 그리 다르지도 않게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을사늑약이 있기까지 한반도와 근방에서는 청과 일본이 싸웠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심지어 일본군은 국내에 개입해 동학농민군을 무차별 살육하기도 했구요. 중동의 석유이권을 노린다는 서방처럼 일본이나 러시아는 철도부설권이나 광산채굴권 같은 각종 이권들을 독차지했던 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합니다. 결국 국권을 잃은 우리민족이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어떤 투쟁을 벌였는지를 되돌아 본다면 현재 중동의 사람들이 단지 종교적인 광신도나 좀비는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중동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적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가면 적대적인 북한과 맞서고 있는 한반도는 '동북아의 폭탄'과 같은 지리적 위치에 있지요. '중동은 폭탄'이라며 여유를 부릴 입장이 못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먼저 한국의 국민으로서 중동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인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할 문제입니다. 세계화가 심화되는 현재에 있어 우리가 단순히 중동과 거리가 멀다하여 안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동과 멀리 떨어져 있는 뉴욕이 9·11테러로 , 파리가 샤를리 에브로 테러로 공격받는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세계적인 안정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공격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평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그 전에 현재의 중동문제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구요? 일단 저희같은 소시민들이 무슨 정책 결정권도 없고 국제적인 발언권도 있을리 없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중동을 알아 보는 것입니다. 동의의 이해가 아니라 알려고 하는 이해를 해보는 겁니다. 그럼으로서 딱히 엄혹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바꿔보시려면 미국 대선쯤은 출마해서 트럼프란 자와 입씨름을 해야 할텐데 다음생도 기약하기 어려운 일이죠. 한국의 시민이자 크게는 한 사람의 세계시민으로서 우리는 이웃의 사정을 이해해 보고 그에 따른 입장과 견해를 온당하게 정해보는 것, 그 정도가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어려워 보이신다구요? 그래서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 한 번 일독해 보시지요. 세계시민이고자 하는 당신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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