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후미오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비즈니스북스, 2015
가장 최근에 이사는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시는지요? '살면서 느는 것은 살림'이라고 분명 들어올 때는 5박스 분의 짐이었던 것이 이사를 나가려고 새로 포장을 해보면 10박스는 너끈히 나옵니다. 이것저것 싸다 싶어서 사왔던 것들, 언젠가 필요할 것 같다 싶어서 쟁여놓았던 물건들을 그제서야 발견하게 되지요. 잔뜩 쌓여있는 이삿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옮기느라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 편으로 '내가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했었을까?'란 성찰도 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작동원리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의 필연적 숙명은 자기증식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물건을 많이 생산하고 또 많이 팔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멈추거나 불가능해질 때를 우리는 불황이라고 하지요. 이런 때가 되면 사람들은 충분한 화폐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물건들을 사줄 수가 없지요. 수요가 줄어들수록 기업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기에 수요자를 기다리는데서 나아가 수요자를 창출하지요. 각종 마케팅기법이 발달하고 과대광고와 선전의 성행, 유행의 창조 등은 다 그런 연유에서 발생합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생산력은 충분한데 수요가 따라주지 못하기에 기업들은 물건을 팔지 못해 난리지요. 덕분에 우리는 매일같이 물건을 사라는 유혹에 시달립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핫딜 혹은 특가상품이 쏟아지고 오프라인에서 잠시 길을 걸을 때면 "₩5000" → "₩2500" 같은 문구들이 길가에서 당신을 유혹하지요.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언제그랬냐는 듯이 지갑을 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놀란 적은 없으신지요?
물건에 중독된 시대. 명품에서부터 좌판의 두부 한 모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풍요한데도 더 많이를 원하는 이상한 시대지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미 두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으면서도 'One more!'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는 여기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았던 사물들을 하나씩 처분하고 떠나보냄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집에 수많은 물건들을 쌓아두고 살면서도 다른 물건들을 또다시 탐내는 삶을 살았던 저자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개념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삶을 본격적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합니다.
여느 자기계발서류가 그렇듯 "~하라, 그러면 ~하리라"는 가르침이 챕터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자기계발서를 쓰고 팔아먹는 매커니즘에서 봤을 때 이런 디테일한 가르침을 여기에 모두 쓰게 되면 저자와 출판사에게 충격을 줄 수 있기에 간단히 정리만 하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책소개에 나와있는 책의 목차만 찾아보셔도 무슨 이야기 하는지 독자님께서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2장을 통해 우리가 너무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인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을 제공하지요. 저자는 요즘 같은 시대에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할 필요없이 공유(예를 들어 카쉐어링)나 빌리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괜히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저 인간이 무언가를 새로 소유하게 되었을 때의 자극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 같은 것들이 우리를 중독시키고 있다고 진단하지요.
본론은 3장인데 여기서는 진실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법을 적어뒀습니다. 형태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버려라'고 합니다. 멀쩡한 물건도 내게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 오고 난 후라면 쓰레기라는 겁니다. 헐값에 팔아버리던, 당장 쓰레기 봉투를 사와서 배출하던지 말입니다. 이런 실행법이 55개나 소개돼 있는데 여기에 심지어 15개의 더 독한 버리기 비법이 추가돼 있습니다. 스스로를 '버리기 변태'라고 부를 정도로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의식했는지 '버릴 때는 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도 있더군요. 어쩌란 건지.
결론 부분인 4장과 5장에서는 힘겹게 사물들과 작별한 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삶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에 대한 저자 스스로의 간증이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좀 황당한데 물건을 버리거나 줄이고 나서 변화된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대표적인 부분을 축약해서 옮겨보지요.
물건을 줄이고 나서 내가 시작하거나 도전한 일들은 다음과 같다.
헬스클럽의 요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몸이 굳어 있어서 비웃음이라도사면 어쩌나 두려웠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전국 각지에 만나러 갈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웹사이트를 시작했다(예전에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과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 마음을 전하고 사귀게 되었다(예전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비즈니스북스, 2015, 317~318pp.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 즉 스스로도 책에서 밝혔듯이 엔틱카메라나 전자제품, 책 등에 대한 소유욕만 왕성한 채 집에 처박혀 있던 저자가 그것들을 내다 버리자 활기차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간상으로 변했다는 이야긴데 중간에 뭐가 좀 빠진 것 같습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마치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충분조건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필요조건 아닌가요? 다들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갖추고 살면서도 요가도 하고 인터넷에 글도 올리고 연애도 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지요?
쉽게 말하자면 이전에 어느 대통령 후보께서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허XX을 불러봐~ 넌 시험 합격해, 내 노래 불러봐 넌 살도 빠지고"라는 노래를 진짜 진지하게 부르셨는데, 이 논리구조와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이런 구조는 아주 적은 표본을 확장시킨 뒤 일반화하여 믿음을 요구하는 종교적 과정인데 저자 역시 이런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군요. 하여간 5장으로 가서 결국은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물건을 줄이면 진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스스로 규정하고 느끼기 마련이니 긍정적 마인드로 살면된다는 훈훈한 결론으로 마무리 합니다.
책소개는 이정도만 하려고 합니다. 워낙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서 깊이 이야기를 전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국의 지성 바버라 에런라이크 여사께서 미국의 사례를 들어 종교적 신앙(혹은 그런 논리)의 영역을 자기계발서로 포장해 팔아먹는 장사꾼들의 실태를 고발하신 일이 있지요. 그녀의 <긍정의 배신>을 참고하시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간되고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이 붙는지에 대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해롭다(청소도 힘들고, 그만큼 공간도 많이 잡아먹고, 이사하는데도 힘들고 등) → 그런데 왜들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냐?(소유욕 중독이야!) → (버리면 된다) 그래서 버리기 비법 공개! → 버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난 건강해지고 난 애인 생기고 난 활동적으로 변하고 → 그래서 행복해짐. 끝.
위 처럼 한 3~4줄로 끝날 이야기를 무려 400페이지나 들여서 쓴 이유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래야 상품이 돼서 팔릴 수 있으니까요. 사물들에 대한, 소유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색과 성찰 그로인해 생긴 깨달음이나 철학을 배울 수 있을까 기대했던 저의 바람은 애초에 개꿈이었던 셈입니다.
물론 개과천선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간증한 이 일본인의 글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구환경을 위해서도 소유를 적게 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좋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 동의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몇몇 대목에서의 깨달음은 분명 우리 삶을 개선하는데 필요하고도 유익한 조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비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고, 주장에 대한 근거도 '~인 것 같다', '~라더라'는 식이어서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같은 유명인물들을 수십 번씩 인용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만 입었으니 미니멀리스트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려면 주관적인 의견이나 생각보다 객관적 근거, 인용하는 인물의 책이라던지 전문가의 평가 같은 것을 제시해야 하지요. 저자는 그런 부분은 깡그리 무시하고 계속 '~인 것 같다', '~라더라'면서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저승에 가서 스티브 잡스 선생을 인터뷰하고 온 것이 아닌데 말이죠. 이런 걸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하고 신뢰도 점수를 낮게 주는 것 아닙니까. 객관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자기경험 고백과 주장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냥 유명한 인물이니까 있어보이려고 가져다가 적당히 짜맞춰서 쓴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자기계발서류는 주제를 떠나서 거의 비과학적입니다.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근거로 주장을 일삼거나, 저자만의 강한 신념 같은 것을 비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계발서 저자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복사해서 실행한다고 하여 나의 삶이 그렇게 변화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애초에 'ⓐ예수를 믿으면 → ⓒ천국에 간다'는 류의 단순논리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 (서도) ⓑ남을 속이고 재물을 강탈하는데 → ⓒ천국에 간다'처럼 잘못된 논리가 출력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죠. ⓑ부분에 대한 고민과 사색,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성찰 없이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일러주는 몇 마디를 무작정 대입했다가는 전혀 엉뚱한 결과가 출력될 것입니다. 나는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저자더러 AS를 해내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이미 그는 막대한 인세로 부자가 돼 있을테니까요.
분명 소유를 줄이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맞고 인간과 사회의 에너지를 절약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사물들에 둘러싸여 그것들에 빼앗기는 시간과 공간 역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질도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저자는 분명 손에 쥔 것을 놓고 사물들과 작별함으로써 새로운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얻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건 저자와 저자 비슷한 경험을 한 (미니멀리스트라 자칭하는) 몇몇의 이야기 입니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필연성을 말한 것이 아니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는 결심의 간증을 했을 뿐이니까요. 여기까지 정리가 되신 독자시라면 어느 전직대통령께서 즐겨읽으셨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한 대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 법정
이 한마디면 족할 것을 뭐하러 돈 들여 자기계발서 사다가 400페이지나 읽겠습니까? #책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