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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의 책놀이터 Dec 01. 2015

[서평]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으신가요?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가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자신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책'이라고 말해줍니다. 갑에게는 재미있고 좋은 책이라도 을에게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 더 묻는 사람에게는 저자나 작가를 추천하기는 합니다. 실제 자연인으로서의 작가와 작품 속에서의 작가가 달라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사람의 생김새처럼 생각과 논리는 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독자와 잘 맞는 작가나 저자를 발견하기만 하면 그의 글을 읽고, 그가 참고했거나 읽었던 책을 따라 읽어보는 것이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독서의 폭을 넓히는데 꽤나 도움이 됩니다.

저를 기준으로 따지면 장강명 작가는 독자님께 추천할 만한 작가입니다. 우연히 그의 데뷔작 '표백'을 읽게 되면서 그의 팬이 됐고, 그의 작품이 나오면 꾸준히 읽는 독자가 됐습니다. 무엇이 그를 주목하게 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기자 출신인 그의 글이 눈에 잘 들어와서였습니다. 되도록 육하원칙에 맞춰 짧게 끊어 쓰는 스트레이트 문장이 맘에 들었습니다. 그 외에 꼼꼼한 취재를 통한 사실적 묘사, 냉정한 현실인식 같은 것들이 그 이유가 됐습니다. 기자였던 작가가 이제 전업작가로 돌아섰다고 하니 더욱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이 싫어서>는 전업작가 장강명이 쓴 장편소설입니다. 분량은 다른 장편소설들에 비하면 조금 짧은 편입니다. 하지만 독자가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압축성을 자랑하고, 읽고 난 후 느끼는 임팩트가 무척 큽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의 주제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계나'는 헬조선을 탈출하고자 하는 이 땅의 많고 많은 청년 중 한 명입니다.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계나의 말로 진행됩니다. 계나의 내면에 가득차 있는 생각과 욕망, 꿈 등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 이 땅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 것과 이 사회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계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무사히 직장까지 잡아서 살고 있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것과 비슷합니다. 소위 SKY대학을 나오지도 못했고, 여자라서 당하는 성희롱은 권력관계 때문에 항의조차 하지 못합니다. 집은 흙수저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그래서 넉넉한 남자친구 집안과의 만남 후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헤어지는 것이 어떠냐고 권합니다. 모든 것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거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별로 가로막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한국이라서 계나는 호주로 떠나려 합니다. 많은 독자님이 '왜?'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왜 고향을 등지냐고. 계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아.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10~11pp.

독자님은 어떠신지요? 게으르고 약해빠진 청년의 신세한탄으로 들리시는지요? 아니면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해도 능력이 모자라고 그래서 짓밟혀야만 하는 청년의 절규로 들리시는지요? 인간은 개개인마다 능력차가 있고 그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사회의 문제는 바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한다'는 생각, 바로 불평등의 문제일 것입니다. 아마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우하는가는 시대와 공간에 따라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능력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타고난 운을 내재해야만 발현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나는 한국사회에서 살아본 바 '이번 생에 여기서는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계나는 주제넘게 호사를 누리고 싶어했던 허영심 많은 여자였을까요. 노력에 비해 터무니 없는 보상을 바라던 못된 심보를 가진 여자였을까요. 계나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들어보기로 하지요.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153p.

글쎄요. 이것이 그렇게 과한 요구인가요? 이 정도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삶, 그 정도 수준 아닐까요. 오히려 좀 소박하기도 한 것 같군요. 이런 평범한 삶을 살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근접했다는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지워진 아이러니한 운명입니다. 나라는 잘사는데 청년들은 갈 곳이 없는 이 아이러니. 청년들이 모자라다는 진단보다는 일자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냐 이런 진단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는 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주:스페인 프로축구팀으로 세계적인 명문클럽팀) 축구팀의 공개선수모집이 있다고 합시다. 20명만을 선발하는 이 팀의 공개선수모집에 100명의 선수가 몰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50명이 호날두나 메시 같은 실력의 선수들입니다. 나머지 50명도 어지간한 팀에 가면 에이스로 뛸만한 선수지만 이미 탈락이지요. 호날두나 메시급의 50명 중 20명을 선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객관적인 기준으로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를 골라낸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몰린 선수들의 기량이 문제가 아니라 팀 내에 선발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적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이 예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한국이나 대기업, 공개선수모집에 공채,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선수들을 잘 준비된 고스펙의 우리 청년들이라고 대입해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계나는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겠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그런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정감과 물질적 보상이 있다면 한국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기에 계나가 생각한 평범한 삶은 이미 평범한 삶이 아니지요. 평범한 삶이 쟁취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순간, 스스로를 톰슨가젤로 비유한 계나는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계나가 한국을 떠나 호주로 향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무언가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인간은 단순히 밥만 먹여준다고 만족하는 가축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소외당한 계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줬어.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171p.

같은 부모님을 아래서 컸지만 공부잘하고 말 잘듣는 자식만 편애해서 형제간의 묘한 긴장감이 있는 상황, 아시는 독자님도 계시겠습니다. 아마 그런 상황을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계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우리 청년들은 대한민국과 기성세대에 의해 나라망신 혹은 집안망신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지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럴까요? 힘들어하는 청년과 자식보다는 우리 나라와 우리 집안의 명예는 소중하니까요? 취업을 못하는 자식은 일단 집안의 망신이고 더 나아가 이 나라의 실업률을 끌어 올리는 청년백수로 취급할 뿐인 이런 인식에서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년 개인은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저는 계나의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란 말을 듣고 타고르호에서 인도양으로 몸을 던진,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떠올랐습니다. 그 역시도 청년이었지요.


일이면 일마다 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 걸.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합니다. 우리는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당'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너희들은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 최인훈, <광장>, 문학과 지성사, 1976, 116~117pp.

소중한 한 사람이기에 앞서 국가와 집안 같은 집단을 대표하기를 강요당했던 청년들은 개인으로서는 매번 철저히 소외당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서울대반을 분반해서 수업을 따로 시키고, 성적을 1등부터 50등까지 대자보로 출력하여 벽에 붙여놓던 장면 말입니다. 서울대에 진학하고 1등을 해서 학교의 명예를 빛내던 친구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들을 빛나게 만드는데 필요한 들러리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런 학교가, 혹은 그런 집안이, 아니면 그런 국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느낌, 받아보신 적 있으신지요? 지금의 청년들과 광장의 이명준이 좌절하는 대목은 이곳에서 똑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개개인의 능력은 그 차이가 크고, 특히 몇몇 기준으로만 사람의 능력을 평가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 기준에 의해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기성세대가 되면, 똑같은 기준을 후세대에 요구한다는 것은 역시 아이러니입니다. 다수에 의해서 다수를 소외시키는 사회라니. 저는 이것이 헬조선의 핵심에 있다고 봅니다.

헬조선의 핵심에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강렬한 생존욕망과 이것의 좌절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품위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사람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고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을 때에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지요. '사람대우를 받는다'는 충분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난망하다고 느낄 때 청년들은 좌절을 넘어 절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두렵고 힘들어도 먼 타지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이유입니다. 계나는 이것을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청년들을 밀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188p.

사실 제 주변에는 이민을 떠난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하지만 이것을 청년들의 이야기만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40대 미혼모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생각을 고쳐먹더니 결국 이 땅을 떠났으니까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던 그녀를 아빠없는 아이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해외로 밀어낸 것이지요. 나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 나라와 이 사회에 의해 무능력자, 혹은 부도덕자 같은 낙인이 찍혀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에 있어 그들은 부끄러운 존재였고 이민자들 역시 자신들을 부끄러워 하는 조국을 등지는데 큰 미련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굳이 계나와 우리 청년들에게만 해당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에 의해 머슴대우를 받다 자해를 시도한 경비원, 고객의 불만 때문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만 했던 백화점 직원 같은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도 널려있습니다. 이 분들이 살았던 삶의 무대가 헬조선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가 만든 지옥에서 우리가 고통에 신음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책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이상 말이죠. 진짜 책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만 그 뿐이지요. 하지만 생각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자그마한 변화가 모이고 모인다면 언젠가는 큰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속의 작은 시내가 모여 평야를 만나 내천이 되고 대지를 만나 강이 되어 결국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말입니다. 헬조선을 바꿀 수 있는 힘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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