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늦은 봄입니다. 아니 어쩌면 초여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선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가던 시절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제는 무더위를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를 과거에서 지금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저 그렇게 될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산야에 녹음은 우거지고, 아이들은 부쩍 자랐고, 나는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일상을 지내는데 있어 어떤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학생이라면 성적이 조금 올랐을까요. 직장인이라면 연봉이 조금 오르거나 승진하거나 아니면 이직을 했을까요.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출산의 순간을 경험했을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좋습니다.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도 사실 조금씩 변화해 갑니다.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이 장엄한 시간의 흐름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상의 무거움은 삶의 숙명과 같습니다. 여기에는 귀천貴賤이 따로 없으며, 노소老少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몫을 짊어지고 묵묵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사실을 깨닫고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동매문에서 원단을 가득 싣고 내달리는 퀵배달 기사님과 시끄럽게 신호등을 통제해가며 내달리는 국정 담당자의 검은 세단에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이런 대비에서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곤 합니다. 시인 김수영이 노래했던 것처럼 말이죠.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우여곡절 속에서 때론 울고, 때로는 웃으며 이 땅에서 질기게 살아낸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역사라는 이름의 기록에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는 설화나 전설로 간간이 전해지기는 하나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역사의 기록이 아니지만, 선조들로부터 우리의 몸으로 전해진 그 질긴 생명력을 잘 그려낸 기록입니다. 청군에 쫓기어 피난한 남한산성에서의 45일을 그린 작가의 눈은 차분하면서 매섭습니다. 그의 시선을 통해 독자는 사대의 예보다 더 귀한 콩 한줌과 간장 한 종지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산성』은 잘 아시다시피 병자호란과 그로인한 남한산성에서의 농성을 배경으로 씌여진 작품입니다. 여진족이 세운 후금後金은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명明나라를 공격합니다. 그 와중에 후방의 조선은 불안요소였고, 경제적으로도 침략할 유인이 충분했지요. 결국 정묘호란(1차침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침입하게 되는데 이것이 삼전도의 굴욕으로 끝난 병자호란(2차침공)입니다. 청의 기병은 한양을 향해 순식간에 남하합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신 분이라면 시각적으로 떠올리기 쉬우실 것입니다. 그들의 기동력과 전술 앞에 조선왕과 조정은 원래 목적지인 강화도는 엄두도 못내고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쫓겨 들어갑니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종묘사직을 챙겨들고 말이죠.
미숫가루 냄새를 맡고 개들이 다가와 댓돌 아래 엎드렸다. 사공이 돌을 던져 개들을 쫓았다.
― 청병이 곧 들이단친다는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
― 갈 곳이 없고, 갈 수도 없기로......
― 여기서 부지할 수 있겠느냐?
― 얼음낚시를 오래 해서 얼음길을 잘 아는지라......
― 물고기를 잡아서 겨울을 나려느냐?
―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 볼까 해서.......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이었던가.......
-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46p.
뒤늦게 임금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판서영감 김상현은 이렇게 뇌까립니다. 이것이 백성인가라고. 사대부로서의 예와 법도에는 정통한 그가 정작 경세제민하겠다는 대상인 백성에 대해서 그제야 알았나봅니다. 우습지요.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견뎌내야 할 치사함과 굴욕은 타인에게 지워둔 채, 조정에 나가 현학적인 이야기를 다투던 그에게는 놀라웠나 봅니다. 명을 배반하고 오랑캐에 머리를 숙이느니 목을 내놓겠다는 이 분에게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쥐고 스스로만 애국자라 고함지르는 분들의 오마주가 떠오르는 건 왜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체면 차리고, 권위 세우는 양반님네도 산속의 성에 갇힌 채 구원병은 오지 않고, 군량은 다해가는 현실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도망갈 곳도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귀하신 예판대감은 천한 산속 대장장이를 찾아갑니다. 금군이나 수어사도 할 수 없는 일을 맡기려 함입니다.
― 나루는 무탈하냐?
― 대감께서 어찌 아이의 안부를......
서날쇠는 예판이 찾아온 용무를 먼저 묻지 않았다. .... 김상현이 처음으로 서날쇠의 이름을 불렀다.
― 날쇠야. ....... 내 처음부터 너를 눈여겨보았다. 한 번만 나를 따라다오.
― 성이 갇혔는데, 밖으로 출타하시렵니까?
― 나는 아니고, 너 혼자서 가야 할 일이다.
김상현은 격서가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정과 격서가 시급히 당도해야 하는 사정을 서날쇠에게 설명했다. 어둠 속에서 서날쇠가 말했다.
―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어찌 하시렵니까?
― 네가 돌아와야 문서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갔다가 돌아올 수 있겠느냐?
― 갈 수 있는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지는 나가 보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겠구나. 그래서 가겠느냐?
― 적이 왔다 해도 온 땅이 다 막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철물 행상질을 오래해서 먼 곳 물정은 좀 아오만......
― 다녀오겠느냐?
―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
―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227p.
백성들이 햇볕 아래서 흙과 섞이며 이어온 생명력의 강인함을 깨달은 예판대감은 애걸합니다. 부디 목숨을 걸고 충절을 다해달라구요. 궁지에 몰린 예판대감을 향해 서날쇠라는 대장장이가 던진 시크한 한 마디가 인상 깊습니다. 충절에는 귀천이 없는가 몰라도 일상에는 귀천이 있었다고.
산성 안에서 벌어진 지루한 논쟁과 역사에 치욕스런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는 말단 관리들과 사대부들의 꼼수 끝에 삶을 열기로 결정한 임금은 삼전도로 나아갑니다. 죽음으로서 삶을 열려던 김상현과 성문을 열어 삶을 열려던 최명길 사이에서 내린 임금의 결정이었습니다. 임금과 사대부는 치욕을 겪었습니다만 백성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성 안에는 봄이 찾아오고 서날쇠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일상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서날쇠는 서문으로 들어와 행궁 뒷담길을 따라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불길이 끊긴 화덕이 썰렁했고 오소리가 굴을 뚫었다. 서날쇠는 진흙을 이겨서 화덕 안쪽의 구멍을 막았다.
백성들이 날마다 몇 명씩 성 안으로 돌아왔다. 봄농사를 시작하기가 너무 늦지는 않았다.
서날쇠는 뒷마당 장독 속의 똥물을 밭에 뿌렸다. 똥물은 잘 익어서 말갛게 떠 있었다. 쌍둥이 아들이 장군을 날랐고, 아내와 나루가 들밥을 내 왔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온 날 나루는 초경을 흘렸다.
나루가 자라면 쌍둥이 아들 들 중에서 어느 녀석과 혼인을 시켜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서날쇠는 혼자 웃었다.
-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227p.
음식물 섭취의 과잉이 비만을 일으키는 것과는 반대로 관념의 과잉은 현실과 일상을 빈곤하게 합니다. 선거벽보가 나붙고, 유세차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두고 관념의 충돌과 설전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각종 논리와 정당성을 주장하는 말과 글이 넘쳐납니다. 과잉됩니다. 마치 그 날의 산성 안에서처럼 말이죠.
때가 되면 국민 각각이 판단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정을 내리겠지요.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던가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생명력의 근원입니다. 부디 그 때가 되었을 때 이전에 주었던 상처나 앙금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랏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삶을 살아가는 서날쇠와 식솔들의 건강한 삶을 기억하시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