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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의 책놀이터 Nov 29. 2015

[서평] 불굴의 개인과 휴머니즘의 콜라보레이션

앤디 위어 著, 박아람 譯, <마션 Martian>, RHK, 2015

영화 <마션>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한동안 버스옆구리에 잔뜩 붙어있는 광고쯤은 보셨을 것 같습니다. 일단 마션(Martian)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뿐더러 왠 우주인 얼굴 하나만 덩그러니 나와있어서 호기심이 생기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마션이라는 말이 처음이라 사전을 찾아보니 '화성의, 화성인'의 뜻이었습니다. 화성(Mars)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마션>은 인류 최초로 화성인이 된 한 남자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그린 이야기였습니다.


제목을 이해하고 나니 왜 우주인이 얼굴을 덩그러니 내놓고 있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화성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호흡과 온도의 문제 때문에 우주복을 입지 않고서는 외부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배우 맷 데이먼의 얼굴을 하고 있는 캐릭터는 마크 와트니라는 미국인 우주비행사입니다. 엔지니어 겸 식물학자로서 화성탐험의 임무를 맡아 무사히 화성에 도착합니다만... 불행한 사고로 동료들과 함께 화성을 탈출하지 못하고 홀로 화성에 남겨지게 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화성에 남은 최후의 대원이자 최초의 인류, 즉 화성인이 되고 만 것이지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저는 영화와 책 중 무엇을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책을 먼저 집었습니다. 정말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정도 분량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단시간에 읽어낸 기록을 세운 것 같습니다. 그만큼 손을 뗄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책을 너무 재밌게 읽은 경우에 영화를 볼 경우 거의 실망하고 나온 경험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순수하게 책 <마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영화와의 비교 역시 그래서 불가능합니다)


다시 마크 와트니의 좆된 상황으로 돌아가 보시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수 있겠습니다. 일상에서는 'ㅈ같은 상황', ',ㅈ같은 놈' 같은 경우로 흔하게 활용되는 이 단어가 글에 등장하면 왠지 거칠고 쓰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우리의 생각이 뿌리깊기 때문에... 무슨 책 이야기 한다면서 '좆'이란 상스런 말을 쓰느냐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제가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정신을 차린 후 남긴 첫 기록의 첫 한 마디 였기 때문입니다. <마션>은 이 한 마디로 시작됩니다.


▩일지기록: 6화성일째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 앤디 위어 저, 박아람 역, <마션>, 랜덤하우스코리아, 2015, 15p.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인 것이지요. 자신만 남기고 동료들은 (부득이) 우주선을 타고 떠나버렸고, 마크 와트니는 홀로 화성에 남겨진 상황이니까요. 심지어 지구나 가까운 우주선에 통신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으며, 식량은 아무리 아껴도 300일을 넘길 수 없는 분량 뿐입니다. 이제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화성에는 마크 와트니를 도와줄 사람도, 장비도,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던 와트니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좆됐긴 하지만 끝나버린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음을 다잡은 와트니는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거주용 막사 안에서 감자재배를 시도하면서, 한 편으로는 농업용수확보를 위해 위험한 수소를 이용해 H2O를 합성하려는 시도까지 기발하면서도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과학적 소양이 얕은 저는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지식과 추리를 활용해 간신히 따라갔지만, 평소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고 지식이 풍부한 분들은 더욱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트니의 노력은 과거 화성을 탐험하고 사장되어 있던 패스파인더를 찾아내 지구와의 통신을 재개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거주용 막사가 있던 베이스캠프에서 800Km 떨어져 있는 패스파인더로 접근하기 위해 이동용 로버를 개조한 와트니는 마침내 패스파인더에 다다르고 이를 끌고와 통신장비를 고쳐냅니다. 마침내 지구와의 통신을 재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지요.


한 편, 와트니의 팀동료들과 지구에 있는 나사(NASA)에서는 마크 와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사에서 위성 사진을 분석하는 민디 파크라는 사람에 의해 극적인 반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크 와트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사진 분석에 의해 와트니의 활동 증거를 찾아내게 되고, 이는 공식적으로 발표되게 됩니다. 책임자인 밴커트를 비롯한 나사의 전 직원은 이때부터 와트니를 화성에서 구해오기 위해 필사적인 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와트니의 생존을 늘리기 위해 우선 급하게 식량을 싣고 떠난 우주선은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맙니다. 원래 목적과 다르게 개조하다보니 점검과 테스트가 부족했으니 원래부터도 모험이기는 했지요. 식량공수작전이 실패하자 나사조차도 이제 방법이 없게 됩니다. 제 아무리 나사라고 하더라도 우주선을 쏘아올릴 로켓추진체를 뚝딱 만들어낼 재주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중국에서 준비중인 우주선 발사를 위한 로켓이 있었는데 중국의 협조를 얻어 이 로켓을 빌리자는 것입니다. 기발하기는 하지만 과연 될까 싶은 이 작전은 어떻게 됐을까요?


오늘은 유달리 스포가 많았습니다. 책 본문에 관한 안내는 여기까지만 해야 하겠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다면 특히 재미있을, 이 우주공상과학소설의 예비독자님들께 폐를 끼치는 것일 테니까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마크 와트니 특유의 입답 때문에 어려운 상황임을 알면서도 깔깔대게 하는 <마션>의 매력이 반감될 리는 없지만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는 마크 와트니. 민방위를 하는 지금에 와서도 군복무 시절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한 여름 땡볕 아래서 완전군장행군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소위 퍼진다고 하지요. 건장한 20대 초반 남성의 체력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병사들이 속출했습니다. 열사병, 탈수증상 등 다양한 이유로 나가떨어지는 병사들이 많았고, 특히 신병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지휘관은 쓰러진 병사를 구급차량으로 옮기게는 했지만 지친 정도의 병사는 그대로 행군하게 했습니다. 그 병사의 군장은 같은 소속의 병사들이 나눠지게 했구요.


저는 상병쯤 되는 때였던 것 같은데 퍼진 후임병의 군장을 나눠들고 행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0분간 휴식' 시간이 되어 그늘에서 쉬고 있었지요. 그 때 퍼져서 자신의 군장을 선임병들에게 들리고서는 겨우겨우 따라오던 신병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자신에 대한 자책, 선임병들에 대한 미안함, 눈치보임 이런 것들로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 표정이 정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자 분대 최선임병이 신병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농담 한 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남자다. 그래야 나중에 네 여자와 가정도 지키지"

마초라고 생각했던 그의 철학이 드러난 말이었지요.


결국 그 신병, 훈련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받았고 부대 복귀 후 선임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지요. 신병으로서는 드물게 포상휴가증도 받아서 백일휴가 뒤에 휴가를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 저는 당시 분대장이었던 그 최선임병의 표정과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농담 한마디 할 수 있는 여유는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는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를 보면서 그 선임병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상황이 나쁘고 힘이 들지만 그래도 자신을 추스르며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면이 말입니다. 인간이 가진 불굴의 의지는 그래서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그렇게 빛이 나 보였던가 봅니다.


화성에 갇힌 마크 와트니의 상황, 고강도의 첫행군에서 체력의 한계에 처한 신병의 상황이 단지 특수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이런 극한 상황은 자주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던지, 오래 준비한 시험이나 취업활동에서 실패를 한다던지, 회사가 망하거나 정리해고를 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크 와트니 말대로 '나는 좆됐다'는 상황인 것이지요. 하지만 와트니처럼 다시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한 번, 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도 인생은 계속 이어집니다. 영화 <타짜>에서 고니(조승우 분)의 말처럼 "인생 관뚜껑에 못 박히기 전에는 모르는 것" 아닙니까? 어려운 상황임을 알지만 그래도 한 번 씩 웃고, 여유를 찾으셔서 다시 뛰실 수 있으면 합니다.


마크 와트니가 위기에서 탈출하는데 있어서 불굴의 의지를 가진 긍정적인 인간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그를 돕고 위해주는 여러 사람과 조직의 힘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와트니를 구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하는 나사직원들은 물론, 와트니의 생존소식을 전해듣고 그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전세계인들까지 말입니다. 전세계인들의 관심과 지지는 나사로 하여금 구조계획을 추진하는데 더욱 탄력을 받게 해주었고, 심지어는 가상의 적국이라는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물론 문학의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너무 낭만주의적으로 볼 문제는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우주항공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나라 사이에서 자국의 우주선을 쏘아올릴 로켓을 몇 가지 조건(미국우주계획에 중국인 우주비행사를 참가시킨다 등)으로 양도한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휴머니즘이 가진 긍정적인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자주는 경험할 수 없지만 우리는 휴머니즘이 가진 놀라운 힘을 눈으로 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신당역의 기적1) 같은 사건으로 대표될 수 있겠지요. 승객들이 전동차에 끼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동차를 밀어서 올려내는 장면이지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최근 러시아에서도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군요.2)


인류최초의 화성인 마크 와트니의 화성생존기와 지구귀환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단 마크 와트니와 지구의 구조팀이란 두 주체가 있습니다. 이 둘을 조합하는데 각각의 성질을 달리해 보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네가지 경우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긍정적 마크 와트니 + 휴머니즘적 구조팀과 대중
②긍정적 마크 와트니 + 非휴머니즘적 구조팀과 대중
③부정적 마크 와트니 + 휴머니즘적 구조팀과 대중
④부정적 마크 와트니 + 非휴머니즘적 구조팀과 대중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①이 가장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이 가진 능력과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이며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②나 ③은 어떠할까요? 전망이 어두울 것입니다. ②의 경우,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지구의 구조팀이 적극적이지 않다면 그를 구조할 우주선 마련이나 식량공급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나 '우리의 세금을 그런 곳에 쓰지마라'는 반대여론이 압도적이라면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무슨 발버둥을 치던 지구귀환은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③의 경우라면 아무리 지구에서 애를 쓰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와트니 스스로가 수단을 강구하지 않고 '안될거야'라며 포기한다면 말짱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지요. 같은 이유로 ④는 말할 것도 없이 끝장인 게지요.


영화에서는 아예 지구로 귀환한 마크 와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소설에서는 그냥 구조된 상황에서 끝이 납니다. 이 결과는 누가 뭐래도 "①긍정적 마크 와트니 + 휴머니즘적 구조팀과 대중"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모자랐다면 장담할 수 없는 결과였던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얼마나 많은 마크 와트니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물도 공기도 없는 곳에 갇혀서 연명하며 살아갑니다. 죽음과 빈곤의 공포로부터 항상 삶을 위협 당합니다.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네가 부정적이고 무능해서 그렇다"고 윽박지릅니다. 하지만 ②의 경우처럼 개인이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라 할지라도,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데 있어 인색하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습니다. ③의 경우라고 우기기 전에 과연 우리 사회가 수많은 마크 와트니들에게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③의 경우가 맞느냐인지 말입니다. 소설 <마션>이 우리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산하의 썸데이서울> 블로그에서 인용. 본문 http://nasanha.egloos.com/10949278

2) 2015.04.06 국민일보 시사면 정지용 기자 기사. 본문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311106&code=611316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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