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 사용설명서

마흔이 되어도 나를 알지 못했습니다.

by 선형

수술이 끝나 마취에서 깨어났습니다. 수술 통증보다 추위가 먼저 나의 감각을 깨웠지요. 수술실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남편이 나를 보더니 옅은 미소를 보내주며, 따뜻하고 두꺼운 손으로 내 손을 감싸주었습니다. 남편의 손은 한겨울에도 난로처럼 따뜻했던 기억과 함께 추위에 떨던 몸이 진정 되었지요. 병실로 돌아온 뒤, 개운함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저의 결정을 존중했지만 수술 후 힘든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 하더군요.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라 그런 질문을 했을 수도 있어요. 헛헛하지 않은지? 슬프지 않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둘러둘러 궁금해했습니다.

"두 아이들이 있으니 괜찮아, 이젠 진짜 통증에서 벗어났잖아, 마음은 괜찮아?"

남편의 질문에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몸이 아닌 마음이 괜찮은지 물어오는 남편의 질문에 서둘러 대답을 해주기 보다 나에게 물어보듯 질문을 곱씹었습니다. 섣부른 판단이었는지? 잘한 결정이었는지? 여자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이쁜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후 가족들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알수없는 통증으로 한 달, 한 달을 버텨야 했던 여러 날들이 스쳐갔습니다. 한 달에서 이주일정도는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던 통증과 이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를 찾아다녀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진통제로 몇년을 버텼지요. 새벽이면 거므스름히 창문으로 비쳐오는 빛을 희망 삼아 혼자 참아냈던 어둠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둘째를 낳고 더욱 심해진 통증이었으니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당연하다 생각했던 음식들이,

내 몸을 몰랐기에.

보험을 들어두었기에.

병원의 의사선생님만을 의지 했기에.

전 제 몸에서 아우성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병원에서 답을 찾으려 세월을 보냈습니다. 병원에서 알려주는 병명은 없었습니다. 포기했고 매달 찾아오는 통증은 삶의 죗값이라 생각하며 버텨보았습니다. 그 결과 몸은 곪아버렸고, 수술대에 올라가 곪은 곳의 한부분을 도려내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지요. 몸이 아픈 원인따위는 궁금하지 않았어요. 수술이 끝나고 남편이 물어왔을 때는 통증에서 벗어났다는 개운함이 더 컸습니다. 새로운 삶을, 한 달을 홀홀히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기에 저의 내면 깊숙함까지 들어가서 답을 찾지않았습니다.


"응, 괜찮아, 이젠 통증없이 한 달을 꽉채워서 활기차게 보낼 수 있으니 기대돼."


몇달은 수술부위의 통증이 있었지만, 활기를 빨리 찾고 싶어 요가를 매일아침 하였습니다. 에너지가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한달, 두 달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뒤 다시 침대에 누워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활기참이란 찾아볼 수 없고, "피곤해"라는 단어가 말끝마다 붙어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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