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고목나무

15년 된 나무가 죽으며 가르쳐준 것

by 선형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여름이 막 시작되어 따뜻한 바람이 커튼과 테이블 위 각티슈를 흔들었다. 토요일 오전, 아이는 늦은 아침을 먹고 놀이터로 나갔고, 남편은 주말에도 일이 있어 회사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한 시간, 나는 독서대에 세워둔 책을 펼쳐 들고 막 첫 줄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창가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15년 동안 함께해온 고목나무의 잎이 바람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상했다.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직 푸르른 잎들이 왜 떨어지는 걸까? 책을 내려놓고 창가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이상했다. 연한 녹색 새잎을 살짝 건드려보았더니, 잎은 힘없이 툭 떨어져 내렸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생각해보니 몇 달 전, 새로 입양한 푸들이 자꾸 화분 흙을 파헤치는 바람에 나무의 위치를 바꿔주었다. 그래도 잘 자라는 듯해 기특한 마음에 물을 평소보다 듬뿍 주었고, 새로 이사 온 집에서는 더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웃자란 가지도 깔끔하게 다듬어주었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심한 주인의 보살핌에도 추위와 목마름을 견뎌낸 나무였기에, 이번에도 금세 회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나무는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잎은 모두 떨어지고, 뿌리부터 검은 곰팡이가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 하나 없는 검은 몸통만 덩그러니 남았다. 화분에서 죽은 나무를 뽑아내야 했지만,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다. 한동안 그 검게 마른 나무를 그대로 두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나무를 보다가 문득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수술을 받은 지 1년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활기찬 삶은 찾아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라고 했지만, 내 몸은 늘 피곤하고 무거웠다.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해도, 오후가 되면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저녁이면 온몸이 붓고, 밥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했다. 새로 돋아난 나뭇잎이 힘없이 떨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수술 후 회복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지쳐가는 내 모습 같았다.


검게 변한 나무를 보며 깨달았다. 햇빛, 바람, 물, 흙만 있으면 자라는 식물이 죽은 이유는 단순했다. 과한 물, 그것이 문제였다. 나무를 더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에 준 물이 오히려 나무를 죽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 몸은 어떨까? 매일 먹고 마시는 것들이 과하면, 결국 내 몸도 저 나무처럼 무너지는 건 아닐까?


일상을 돌아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대신 먹는 크림빵, 바쁘다는 핑계로 시켜 먹는 배달음식, 피곤할 때마다 찾는 달달한 커피와 초콜릿,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늦은 밤 먹는 치킨과 맥주. '피곤하니까', '바쁘니까', '스트레스 받았으니까' 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나도 무심코 내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계속 넣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곰팡이가 나무를 덮어버렸듯, 내 몸속에도 보이지 않는 독소가 쌓여가고 있었다. 병원 검사로는 찾을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내 활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 깨달음은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처음엔 작은 실험으로 시작했다. 밀가루 음식을 단 3일만 먹지 않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먹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몸이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속이 더부룩하고, 다음날 얼굴이 붓고, 피로감이 더 심해졌다. 아, 이게 내 몸이 하는 말이구나. 그동안 나는 내 몸의 언어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알아차림의 순간부터 5년이 흘렀다.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40년 동안 길들여진 습관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것은 끊어야 할지, 운동을 할지 말지, 편안함과 도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하지만 그만큼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지금 나는 매일 부엌에 선다. 아침마다 따뜻한 밥을 짓고, 제철 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거창하지 않다. 특별하지도 않다. 그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과하지 않게 먹고, 단 것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신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여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오늘도 부엌에서 내 마음속 고목나무에 정성스레 물을 준다. 이제 그 나무는 새로운 잎이 돋아나고 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보살핌과 밥심은 느리지만 정확했다. 그리고 그 느린 힘이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꾼다.


체력은 단순히 신체적인 힘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풍성하게 하며, 하루의 즐거움을 좌우하는 기본 에너지였다. 나를 지키며 버텨내는 힘, 그것은 바로 내 몸을 채워주는 한 끼의 정성에서 시작되었다.


15년을 함께한 나무는 떠났지만, 그 나무가 남긴 가르침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알아차림'이었다. 검게 변해가던 나무를 보며 죽음 앞의 내 모습을 보았고,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정직한 음식으로 몸을 채우고, 좋은 에너지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 그것이 내가 찾은 답이었다. 여러분도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길 바란다. 아주 작은 사건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희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시작은 언제나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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