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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랑B Oct 08. 2021

선의에 관한 단상

 2주 전의 일이다. 출근 전에 마실 드립백 커피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전라남도의 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생산하는 커피였다. 추석 연휴 직후라 주말 지나서 배송되겠거니 했는데 바로 다음날 도착했다. 추석 전후로 택배사 물류센터에 박스가 산처럼 쌓여서 기사들이 고생한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 터라, 이 정도로 배송이 빠르려면 평소보다 몇 배로 일해야 하지 않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다행히 상품에는 하자가 없었다.


 그 주 목요일, 퇴근해서 집에 와 보니 방에 택배 상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왠지 눈에 익었다. 운송장을 보니 며칠 전에 배송된 커피와 똑같은 내용물의 택배였다. 처음 택배에 없었던 거래명세서가 한 장 첨부되어 있었는데, 판매자가 주문 수량에 딱 맞게 보내 놓고는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같은 물건을 또 보낸 것이다. 착불로 반송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오후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말 약간 어눌한 나이 지긋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전화를 끊고 5분 정도 기다렸다. 다시 전화한 남자의 말투는 약간 과하다 싶게 공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말씀하신 대로 같은 주문이 두 번 배송된 것이 맞고요, 추석이라 바빠서 직원들끼리 서로 업무 전달이 잘 안 됐던 것 같습니다."

 "아, 그럼 반송할게요. 착불로 보내면 되나요?"

 "그게…… 저희가 반송을 받으면 조금 일처리가 복잡해져서요, 다음에 많이 구매해주십사 하는 뜻으로 저희가 드릴 테니 받아주시면 안 될는지……."


 몇만 원 상당의 물건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제안이 약간 당황스러웠다. 길에서 신장개업 홍보용으로 나눠주는 주방용 행주라면 기꺼이 받겠지만 이건 엄연히 금전이 오가는 거래가 아닌가. 판매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반송을 받으면 곤란한 사정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배송비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3천 원 아끼자고 2만 원 넘는 커피를 그냥 준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내가 너무 뭐라고 했나?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첫 번째 통화에서 내 말투는 설명조에 가까웠지 항의조는 아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건조한 말투가 도리어 상대를 주눅 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전에 비슷한 실수를 저질러서 고객에게 항의받거나 손해를 봤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돈 받고 파는 물건을 공짜로 갖는다는 것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3만 원짜리를 돈도 안 내고 가질 수는 없어요. 지난주에 송금한 계좌번호 남아 있으니까 그쪽으로 돈 보낼게요."

 "아…… 저희 잘못인데…… 그럼 배송비 3천 원 빼고 27,000원만 보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전화 끊고 바로 송금해드릴 테니 확인해주세요."


 두어 번 더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돈은 3만 원을 보냈다. 3천 원이 땅 파서 나오는 돈은 아니니까. 물론 물건 주문할 때 붙는 배송비를 아끼려고 갖은 꼼수를 강구하는 평범한 서민인 나에게도 3천 원은 쉬운 돈이 아니다. 판매자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그의 제안대로 물건을 그냥 받거나 상대의 곤란을 무시하고 착불로 반송하면 될 일을, 나는 예정에 없던 추가 지출을 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화를 내며 항의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그런 결정을 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3만 원의 추가 지출이 손해라고 느낄 까닭이 없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이번에 산 커피는 그간 마셔본 것 중 손에 꼽을 만큼 맛과 향이 좋다. 아침에 한 잔 마시면 하루치 카페인이 풀 충전된다. 개별포장이어서 조금 오래 보관해도 변질될 걱정이 없고, 소모품이기에 나중에 재구매할 것을 미리 산다고 합리화할 수 있다. 옷이나 신발이었다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또 사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다른 한편에는 관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종의 역지사지였다. 바쁘게 일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나도 있기 때문이다. 물품을 이중으로 발송한 것은 실수지만 연휴 직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실수였다. 그리고 냉정하게 따졌을 때 판매자가 손해를 볼지언정 고객인 내가 손해를 볼 일은 아니었다. 살다 보면 저지를 수 있는 작은 실수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관용의 이면에 그곳이 중증장애인들의 직업재활시설이라는 점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실, 나는 이 점이 불편했다. 실수는 넘어갈 수 있고 맛있는 커피를 구매하는 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직업인으로 존중하지 못한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내 전화를 받은 분이 약한 언어장애가 있는 데다 꽤나 쩔쩔매는 것이 전화 너머로 느껴져서 순간 동정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나를 따돌리지 말고 같이 잘 놀아주라고 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나와 놀아준 거라면 이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외롭더라도 홀로 놀이터에 남아 있는 편이 낫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삶'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는 힘의 주된 근거가 법률, 도덕, 교양, 인권 감수성에만 있다면, 이는 마치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 친구들을 회유하고 달래주던 어머니에게 기대어 얻은 '거짓된' 우정과 같지 않은가.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타인을 나와 같은 인격과 주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대한다는 것은 어떤 이해타산이나 '착한 마음'이 전제되지 않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의미로 가까워지는 일을 포함한다. 나는 그의 손해를 염려해서 선뜻 3만 원을 썼지만 그 안에 중증장애인을 향한 동정과 연민이 있다면 어떻게 해도 순수한 선의라고 하기는 어렵다. 나의 '선의'를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어도 그 사람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수 있다. 모든 선의에는 예기치 않은 역효과라는 리스크가 늘 따르기 마련이므로. 특히 선의를 베푸는 상대가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면 단순히 신체 차이에서 빚어지는 권력 불평등 때문에 선의가 아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잘 지워지지 않는 접착제 찌꺼기 같은 찜찜함은 내가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위에 인용한 김원영의 글처럼 그 판매자는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실수를 받아들이고 3만 원을 받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니까.


 아주 오래 전, 거리에서 휴지를 팔며 살아가는 두 다리 없는 장애인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손님이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가면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 거스름돈을 주었다. 손님은 선의에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 장애인은 몇 푼의 이익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간다는 주체감이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비장애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쭙잖은 동정에 기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말이다. 다시금 김원영의 글을 인용하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몸이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사회 안에서 타인과 부대껴 사는 것이야말로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사람다운 삶 아닐까.


 선의를 베푸는 데는 좋은 마음보다 깊은 고민과 까다로운 행동 선택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필요에 맞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공감보다는 이해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상상 속에서 남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은 분명 중요한 능력이지만 이것이 지나쳐 일을 그르치거나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히는 일도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 때 정말로 도움이 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선의를 베푸는 나에게 도취해서 움직이는 것인지를 잘 따져볼 일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말없는 선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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