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시절, 가발과 모직물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낮잡아 부르던 '공순이'라는 말이 있다. 당시 기준으로도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화장실 한번 마음 놓고 가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미싱 돌리고 가발 꿰매던 공순이들. 그렇게 번 돈 대부분을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고, 자신을 위해서는 값싼 머리핀 한 개 사는 것도 아끼던 여공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가 있다. 아마 지금은 그룹 거북이의 리메이크 곡으로 더 유명할 <사계>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우리 회사도 노래 가사에 나온 공장처럼 작업등이 밤새 켜져 있다. 2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70년대 여공들처럼 잠 쫓는 약을 먹으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근무시간은 4타임(8시간), 쉬는 시간은 오전, 오후 각각 10분씩에 점심시간을 합하면 약 80분이다. 정시에 업무가 끝나면 6시에, 일이 많아 잔업을 하면 8시에 퇴근한다. 잔업수당이 최저임금의 1.5배인 데다 식대가 나오므로 자진해서 잔업을 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돈보다 휴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꽤 많다. 전자는 대개 40대 이상의 나이 든 여공이나 가정이 있는 가장들, 후자는 보통 20대 중후반 젊은 직원들이다.
나는 전자와 후자의 중간 회색지대에 위치한 공순이다. 휴식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되, 정규 근무만 하면 소득이 너무 적으니 적당히 잔업도 하고 특근도 한다. 이것도 5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강화되어서 그전처럼 회사가 바쁘다고 작업자들에게 풀 잔업, 풀 특근을 시킬 수 없게 된 덕분에 부릴 수 있는 여유다. 작년 가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유예기간이었던 5월 초까지 그야말로 개미처럼 일했었는데, 그때 번 돈을 지금도 종종 병원에 갖다 바친다. 이 정책 때문에 기업들은 손해가 막심하다고 울상이고, 나는 반강제로 주말을 회사에 바치지 않아도 돼서 웃음 짓는다.
같은 작업자여도 잔업, 특근 많이 못해서 월급이 적다고 울상 짓는 이들도 있다. 대학 다니는 자녀가 있는 주부사원들이 보통 그렇게 말한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겠다는데 왜 나라가 못 벌게 하냐고. 나는 싱글이라 월급 적게 받으면 그런대로 맞춰 살지만 한창나이의 자녀가 있는 기혼자들 입장에서는 돈 벌 길이 막힌 듯한 느낌에 답답할 만도 하다. 한때 싱글은 세제혜택이 거의 없고 만 34세가 넘으면 국책사업에서도 대부분 배제돼서 사각지대에 붕 뜬 처지라고 투덜거리고 다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결혼 안 해서 자식 없는 게 복인 것도 같다.
산다는 게 그렇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내가 택한 길을 가다가도 다른 길이 궁금해 샛길로 새거나 길 너머를 기웃거리며 한눈팔면서 사는 것이 인생 아닌지. 때로는 길섶에 떨어뜨린 삶의 한 조각이 아쉬워 되돌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처음 인생길을 나설 때는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어느 결에 놓치고는 잊어버린 꿈 같은 것.
두 달 전이었던가, 엄마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말하셨다. "○○백일장을 한다는데, 너도 한번 출품해봐. 어릴 때 백일장 나가서 상 많이 타 왔잖아." 지역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성인 및 청소년 대상 수필공모전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글짓기 대회 나갔다 하면 곧잘 상을 탔던 것은 맞지만 직장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마음먹고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솔직히 말하면, 옛날만큼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흔 넘은 나이에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살아 있는 전설, 박막례 할머니의 한 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느그들도 인생 안 끝났어. 희망을 버리면 절대 안 돼요. 버렸으면 다시 주서 담으세요. 그러면 돼."
박막례 할머니는 한겨울에 나무하기, 공사장 날품팔이, 파출부, 리어카 장사, 식당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분이다. 평생 일만 하다가 죽겠구나 했다던 분이 노년에 잭팟 터져서 하고 싶은 일 하며 신나게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삼십 대 후반에 세상 다 산 듯이 굴었을까. 공모전 나가서 꼭 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응모했다가 떨어진다고 인생 실패하는 것도 아니니 밑져야 본전이다. 그 즉시 노트북을 켜고 A4 3장 분량의 글을 써 내려갔다. 완성하고 나서 읽어 보니 지레 겁먹은 것이 무색했다. 수상작 발표는 아직 멀었지만, 글이 내 마음에 쏙 든 이상 남에게 자랑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들 어떠하리.
그래, 버린 꿈 찾아 주워오자. 하루 한 줄, 일주일에 한 편을 쓰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면 뭐가 돼도 되겠지. 몽테뉴도 아우렐리우스도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글들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잖아. 나도 나에게 건네는 말을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글로 써서 남겨보자.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럴만한 힘이 아직 있고, 글 쓰는 시간이 행복하다면 천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가치를 스스로 만드는 셈이니, 이 각박한 세상에서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있을까?
공순이의 삶은 삭막하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공순이의 시간을 사서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그 안에 종속시킨다. 손톱만 한 콩고물을 내주고는 그것의 몇 배로 일하기를, 공순이가 꿈을 갖는 대신 꿈속에서도 회사에 매여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 시간은 사도 내 자유는 사지 못한다. 50년 전 공순이들이 미싱을 돌리면서 주말 휴가를 꿈꾸었듯이, 2021년 공순이는 지나간 청춘을 질료 삼아 글을 써서 내 이름 석 자 곱게 인쇄한 책을 내는 꿈을 꾼다. 50년 후의 공순이들은 부디 꿈을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