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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랑B Sep 19. 2021

미주알고주알 운동이야기:내면의 자유를 위하여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벌러덩 누워 책을 읽거나 TV를 봤다. 성인이 된 뒤에도 똑같아서 일단 한 장소에 자리 잡으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운동 좋아하는 사람,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학교 체육시간에 확인해본 바, 운동신경이 둔하고 천성이 게으르므로 평생 숨쉬기 운동만 하겠거니 하고 단정 지었다. 피구경기를 할 때 상대팀 친구들이 던지는 공만 열심히 피해 다녔다. 맞으면 아프니까.


 서른 살 되던 해,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는데 무릎에 통증이 왔다. 난생처음 겪은 관절통이었다. 당시 체중이 80kg에 육박했다. 더는 불어난 몸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건강하게 살 빼는 법'을 찾았다. 다이어트에 여러 번 실패하기도 했거니와, 무리하게 살 빼다가 건강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제일가는 원칙이 '몸을 해치지 않을 것'이었다.


 먼저 동네 헬스장에 회원 등록을 했다. 시설이 좀 낡았고 트레이너가 없는 대신 8만 원 내고 3개월 이용할 수 있었다. 인터넷 고수의 조언대로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20분간 근력운동을 한 뒤 30분간 유산소 운동을 하는 식이었다. 식단도 바꿨다. 과자와 빵을 끊고 아침, 점심은 일반식을, 저녁은 삶은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먹었다. 운동 마치고 집에 가면 삶은 계란을 노른자 빼고 다섯 개 먹었다. 폭식을 피하기 위해 치팅데이를 갖는 것이 좋다고 해서 일주일에 하루는 마음껏 과자와 빵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렇게 한 달 만에 4kg 감량했다. 하루 한 끼만 절식해도 살이 빠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석 달째가 되자 근육이 붙어 '라인'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6개월쯤 지난 후에는 난생처음 복근이 생겼다. 그즈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날씬해졌냐면서 놀라고, 옷 사이즈가 줄고, 과거 사진 속 외모와 현재 사진 속 외모 차이를 실감하게 되자 신이 나서 10개 만에 20kg을 감량하는 기염을 토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기적이었다. 해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새해가 되자 다른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헬스장을 끊고 동네 주민센터 요가 수업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5일, 평일 저녁 7시부터 50분간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평소 요가를 운동 전 워밍업쯤으로 여겼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살 많이 뺐으니까 좀 가벼운 운동으로 바꿔보자.'는 안이한 마음으로 도전했다가 큰 코 쳤다. 몸에 있는 줄도 몰랐던 온갖 근육을 쓰느라 15분만 해도 곡소리가 다. 나름 1년 동안 운동으로 단련한 몸이라고 하늘을 찔렀던 콧대는 첫 수업 다음날 찾아온 극심한 근육통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혼자 슬슬 봐주면서 하는 운동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강사의 동작을 할 수 있는 한 똑같이 하려고 애쓰는 운동은 여러 모로 많이 다르다.


 다시 새해가 되어 요가가 어느 정도 몸에 익자 슬며시 딴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셈이니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주민센터로 달려가 남은 체력을 쥐어짜서 운동한 다음 귀가해서 밤늦게 씻고 12시 넘어 잠드는 생활은 그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데, 돌이켜 보면 헬스장 다닐 때는 주 6일 두 시간씩, 요가 다닐 때는 주 5일 50분씩 운동했던 것이 과욕 아니었나 싶다. 직장생활로 바쁜, 운동이라곤 숨쉬기와 피구밖에 해보지 않은 직장인에게는. 설상가상 7년 다닌 회사가 경영난으로 갑자기 폐업하는 바람에 백수가 된 것도 악재였다. 여하간 운동을 그만두자 식습관은 빠르게 다이어트 전으로 돌아갔고 체중도 점점 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한 달도 나가지 못하고 그만뒀다.


 어찌어찌 재취업에 성공했을 때는 이미 예전 체중으로 돌아간 뒤였다. 20대 때부터 달고 살던 허리디스크 증세를 완화할 겸 밑바닥 찍은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민센터에서 했던 요가는 '순한 맛'이었다는 것을. 야근이 잦아서 주 3일 코스로, 그날 가능한 시간대 수업에 들어갔는데 첫날부터 상당한 강도의 '매운맛'을 경험했다. 아무리 운동을 몇 년 쉬었기로서니 그토록 근육이 아플 일인가 말이다. 결국 4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 뒤로는 운동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따금 엄마가 카드 줄 테니 주짓수 다이어트라도 해보라고 하셨지만, 늘 알겠다는 대답만 하고 어물쩍 넘겼다. 그 와중에 또다시 백수가 되어서 심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시기를 찍었다. 그런 상황에 운동, 다이어트는 사치였다. 결국 사무직에서 생산라인 작업자로 직종을 바꿔 새 직장을 잡았다. 엉덩이무거워서 일평생 서류 다루는 일을 하겠거니 했는데 육체노동이 의외로 체질에 맞아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1년쯤 지나 생활이 안정되자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단하다는 핑계로 퇴근길에 과자며 빵, 비스킷을 매일 사 먹었더니 체중이 무시무시하게 불었고, 아침저녁으로 얼굴과 다리가 퉁퉁 부었다. 그래도 간식을 끊지 못해 인생에 회의가 들던 작년 말, 직장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복혈당 101. 당뇨 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가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당뇨 가족력이 있는 터라 덜컥 겁이 났다.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건강한 중년을 맞이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했다.


 때마침 엄마가 집에서 운동을 하기 위해 가정용 실내 자전거를 사셨다. 그날부로 간식을 끊고 압착 귀리를 두유에 불려 아침식사로 먹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는 찐 고구마 1~2개와 삶은 계란 1개, 서리태를 삶아서 물에 음료 잔이었다. 통념과 달리 지방을 충분히 섭취해야 근손실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기 버터를 고구마에 발라 먹었다. 체중은 식단 조절만 잘해도 빠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운동은 적당히, 실내 전거 40분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 '첫술에 배부를 생각 말고 천천히'라는 모토로 운동한 지 8개월째인 현재, 공복혈당 90~95를 유지하고 있다. 체중은 8kg 빠진 뒤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있지만 별로 조급해하지 않는다. 과거에 체중감량이 약간만 정체되어도 안절부절못하며 운동량을 늘린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이었는깨달은 덕분이다. 무리하다가 도로아미타불 되느니, 인생 길게 보고 꾸준히 정진하는 편이 낫다.



김연아 선수 말이 맞다. 운동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이다.



 때로 집착이 역효과를 부르는 경우가 있다. 눈앞의 작은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큰 변화를 보지 못해 종국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것이다. 예컨대 공복에 재는 체중, 혈당, 혈압 등은 변수가 많으므로 시간 규칙적으로 재면서 건강 상태를 가늠해야 한다. 혼자 판단하기보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 편이 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 나아가고자 한다면 숫자에는 가능한 한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눈금 하나에 울고 웃는 것은 스트레스를 적립하는 행동이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고수들이 절대 체중계에 매일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도 체중 변화에 일희일비하다가 끝내 운동을 포기하는 사태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스트레스 많은 사회다.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지는 못할망정 운동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을 스트레칭을 시작하고 나서 깨달았다. 스트레칭은 그 자체로 좋은 운동일뿐 아니라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이때 핵심은 모든 신경을 몸이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근육을 당길 적절한 자극이 오는지, 심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지, 근육을 이완시킬 부위에 따뜻하고 편안한 기의 흐름이 느껴지는지 등등. 몸에 집중하면 이런저런 번뇌가 머릿속을 차지할 틈이 없다. 그 순간만은 잔소리 많은 직장 상사도, 자기 입장만 중시하는 친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내면세계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다.


 운동으로 스트레스 푸는 법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매일같이 체중계 위에서 희비를 오갔던 과거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게으름과 거리가 먼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체, 혹은 권태의 한복판을 통과하느라 더디게 나아갈지언정 자신을 위한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게으를 리 없지 않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지쳐도 아침이 밝으면 출근할 준비를 하는 당신은 어쩌면, 지나치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니 조금쯤 흐트러지는 순간을, 가끔은 원대한 목표를 잊는 순간을, 그리고 이보다는 자주, 주변 배려하는 데 쓰던 신경을 자기 내면에게 허락하는 순간을 갖자. 삶이 삶다워지는 시간을 누리는 방법은 늘 가까운 일상 속에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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