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일요일에는 사운드포럼 청음실에 화면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면이 안 나오면 제가 서운해 할까요? 다른 때는 속상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조용히 음악 들으며 책 봐야지’ 하고 책을 네 권이나 갖고 갔기 때문입니다. ^^
그날 다 읽은 책이 한 권 있는데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에 읽고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완전 새롭네요.ㅠㅠ 정말 웃기는 건 처음에 읽었을 때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을 내려고 이렇게 글을 진행시키지?’ 하고 궁금해 했던 사실만 기억난다는 거네요. 중간 훨씬 넘게 읽고 나서야 ‘아하!’ 하고 생각났어요. ㅠㅠ. 마치 쥐스킨트의 소설 <문학적 건망증>의 주인공 같았어요. <문학적 건망증>에 보면 저자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데 자신이 줄 긋고 싶은 곳에 어떤 사람이 줄을 그었고, 자신의 생각과 너무 비슷하게 누가 메모를 했다죠. 반가운 마음과 놀라움이 교차했는데, 알고 보니 줄 긋고 메모한 사람은 자신이었죠. 대문호도 그런데.. 뭐.. 흐.
사진에 표지가 보이는 책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입니다. 손택은 말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책을 시작하자마자 문제로 제기한 것이 바로 ‘우리’라는 말이다. 충격적인 사진들을 보고 있는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라는 말은 약소국이나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국가 없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열한 전쟁에 명목상 관심을 보이는 척하는 사람들만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저도 ‘우리’라는 말을 깊게 생각한 적이 있는데요. 그 ‘우리’ 안에 끼지 못하면 왕따가 되고, 외톨이가 되고, 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곳에 집단 따돌림이 생기고, 아군 아니면 적군, 우리 사람 아니면 타인이라는 이분법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참 예쁜 말인데 말이에요.
또 다른 책은 조이한의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인데요, 여성 이미지에 관한 미술책입니다. 기존의 작품을 보며 젠더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은 니키 드 생팔의 작품 <춤추는 나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나나’는 마네의 그림 <나나>와 이름이 같아요. 마네의 나나를 보고 에밀 졸라는 소설 <나나>를 썼죠. 그리고 니키 드 생팔은 뚱뚱한 나나가 춤을 추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생팔의 나나를 보면 왠지 모를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1도 안 읽고 가져가기만 한 책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입니다. 지인이 꼭 읽으라고 거의 일 년 전부터 말한 책인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참, 화면을 볼 수 없으니 음악만 들어야 했는데요. 음악만 듣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보면서 듣는 게 좋으세요?
저는 라이브랑 뮤비는 보며 듣는 게 좋아요. 책 읽을 때랑 다른 일할 때 빼고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