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 Karl Polanyi는 《거대한 전환 Great Transformation》(1944)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라고 규정하고, 노동, 화폐, 자연이 상품이며 이를 ‘허구적’이라 표현했다. 그는 '경제는 이론처럼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 종교, 사회관계에 종속되어 있다'고 하며, 사회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위하여 국가와 시장을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1966)은 다호메이 왕국이라는 사례로 폴라니의 개념과 이론을 드러낸 책이다. 아프리카 토고와 나이지리아 사이에 위치한 다호메이는 현재 베냉이라는 나라이다. 한반도 면적의 반 정도 크기로 16세기 후반에 생겨났다. 식인, 인신 공양, 노예 매매 등으로 잔혹한 역사를 지닌 왕국이지만 국가 경영이 독특하였고 서양 세력과의 노예무역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하였다.
다호메이 왕국과 우이다 교역항은 호전적이고 적대적인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기에 유럽의 교역상으로부터 총과 화약이라는 우월한 무기를 공급받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기로 정기적인 전쟁을 벌여 노예를 확보해야 했다. 이러한 왕국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행정 체제를 갖추어야만 했다.
다호메이에서 눈여겨 볼 것은 가정경제라는 경제 패턴이다. 가정경제 운영의 원리는 '이익을 위한 생산'이 아닌 '사용을 위한 생산', 성원들의 안녕을 위한 자급자족이다. 그들에게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없다. 대신 독프웨라는 노동단이 있어 누구나 도움을 요청해서 받을 수 있다.
다호메이의 교환수단은 몰디브 산호초에서 채취한 카우리 조개껍데기로 국가정책의 통화로서의 지위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직접 교환이 없다. 무언가 구매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재화를 그 나라의 통화로 바꾸어야 한다. 신용거래도 없고 오로지 현금만 가능하다.
시장에서의 가격 책정도 독특하다. 아보메이의 시장에서는 처음 도착하는 여성이 가격을 결정하였으며 그날 하루 종일 다른 이들도 이에 맞추었다. 아보메이는 19세기 중반까지 번성한 다호메이의 수도다. 우이다에서는 같은 상품의 판매자들이 소두도라는 연합체에 소속되어 식료품의 판매가격은 이 연합체에서 결정하였다. 우이다는 국제교역항이다. 소두도에는 한 성원이 병에 걸리면 다른 모든 성원이 방문하여 선물을 가져오는 기회가 되었다. 한 성원이 죽으면 같은 생산품을 파는 모든 판매자가 장례식이 거행되는 8일 동안 문을 닫고 철시하였다.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는 야자 열매 가격은 왕실에서 세계 시장가격을 참조하여 결정하였고, 수공예품은 수공업 길드인 소(so)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책은 폴라니 사후에 발간되었다. 우리에게는 통용될 수 없는 경제제도이며 끔찍한 역사의 다호메이지만 세계적인 장기 불황과 사회 불평등, 만성적 실업, 노동자 인권 문제 등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