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IA, <everything>
유튜브에는 없는 게 없다. 그것은 온갖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무엇이든 찾아보면 있다는 것.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 분야에서 유튜브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유용함은 가히 무한대에 가깝다. 특히나 덕질을 하는 용도로는, 이보다 더 유용할 수 없다. 어떤 뮤지션의 혹은 어떤 장르의, 다른 나라의 혹은 다른 시대의 음악들을 찾아보고 듣다 보면 흐르는 시간을 체감조차 못한 채 음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어떤 맥락도 없이, 유행과도 상관없이, 특정한 뮤지션의 음악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덕질을 하곤 한다. 특히나 유튜브는 지역과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기에, 평소에는 들어보지 못했을 해외의 어느 뮤지션, 혹은 잊혀졌던 과거의 아니면 있었던 줄도 몰랐던 어느 예전의 뮤지션을 (재)발견하면서 그들의 음악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발견의 재미는, 10년도 넘은 어느 시절, 유튜브라는 매체가 사람들에게 이용되기 시작하던 때, 우연히 본 콘서트 영상을 계기로 덕질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처음의 덕질은 동방신기였던 것 같은데 - 지금의 동방신기가 아닌 완전체의 동방신기 - 일본 활동 시절 그들의 도쿄 돔 라이브를 보면서 매료되었던 기억이다 - 일본 활동 시기의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국내 활동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았고, 특히나 그들의 가창력은 아이돌 역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꽤나 수준 높은 것이었다 - 유튜브 덕질의 묘미를 알게 된 나는 그 후로도 다양한 뮤지션을 거쳐왔고, 최근에는 아이코(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여가수)와 양파('애송이의 사랑'의 그 양파)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덕질했던 뮤지션들의 숫자가 이제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있다. 그건 왠지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이토록이나 많다는 것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유튜브 덕질의 유용함은 단지 음악 감상의 범위를 넓히는 데만 있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우연히 접한 어느 음악을 통해, 잊고 있었던 과거 어느 때의 추억을 되새기는 선물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소설가 프루스트는 마들렌의 '맛'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풀어낸 바 있지만, 나로서는 주로 어떤 음악의 멜로디 혹은 분위기를 통해 갑자기 과거 어느 때로 순간이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주로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다 마주치게 되곤 하는데, 오늘도 느닷없이 그런 경험에 맞닦드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경험이 조금은 특별했는데, 그러니까 어떤 노래를 듣고는 즉각적으로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경험으로부터 비롯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노래를 듣자마자 - 아주 짧은 소절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감정이 밀려드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감정의 원체험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어떤 에피소드였는지, 왜 이토록 가슴이 저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건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기억이란 건 어떤 형태로 우리 안에 남아있는 것이길래, 어떤 장면도 떠오르지 않는데 감정은 이토록 선명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억이란 보통 이야기의 형태로 저장되는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왜 이번 기억은 이야기가 없는 감정만으로도 이토록 강렬할 수 있는 것인지.. 어쩌면 기억이란 건, 시각적인 장면이나 서사적인 이야기의 형태보다는, 형체도 없고 사건도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더 근원적인 것은 아닌지...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아서, 그러니까 기억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저장해두지 않기 때문에 사실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 덧붙여지기도 하고 혹은 왜곡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과거 어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당시 그 기억을 함께 했던 가족들 혹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과 너무도 달라서 놀랐던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혹은 사진을 통해서 본 당시의 장면이 내 기억과 너무도 달라서 놀랐던 적이라던가.. - 기억의 판타지와 관련해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After Life(국내제목: 원더풀 라이프)>를 보길 권한다.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죽기 전에 떠올리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스스로 연출하게 하는데, 그 연출된 장면들이란 게 꼭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 그렇다면 기억은 왜 그렇게 왜곡되는 것일까.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이유로 기억은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기억에 관해 연구한 성과들이 있을 테지만, 나의 경험과 뇌피셜에 근거해서 보자면 아마도 그건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기억은 더 크게 왜곡되기도 하고 또 그만큼 오랫동안 남아있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혹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어떤 방향으로든 치닫는 감정이었을수록,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평소에는 무의식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다가, 프루스트가 말했던 '맛'을 통해서든, 혹은 '향기'를 통해서든, 나처럼 '음악'을 통해서든 갑자가 자극되어 다시 깨어나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떠오른 기억의 장면들이란 대부분 어떤 강렬한 감정이 덧붙여져 있곤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미각이나 후각, 촉각, 청각과 같은 감각이 매개가 되어 잠자고 있던 감정을 자극하고, 그 감정이 강렬하게 되살아나면서 비로소 그때의 장면이나 에피소드가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뒤따라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심리학 연구결과를 들어본 기억도 있다. 이 기억 또한 내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거짓 기억일 지도 모르겠지만 -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상기된 그 강렬한 기억은, 감정만이 남아있고 어떤 장면이나 사건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데 그 신기함이 있다. 감정은 강렬한데, 이 감정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이런 경우는 나로서도 드문 일이다. 아마도 꿈에서는 자주 접하는 것 같지만. - 꿈에서는 완전히 새로 구성된 판타지의 경험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니 덜 답답하겠지만 - 감정으로 떠오른 기억이기에,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무언가가 매우 그립고, 어딘가에 두고 온 무언가에 대한 노스탤지어 같기도 하고, 아련하고도 애절한 느낌이 들지만, 그것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는 도대체 알 수 없는, 그런 감정인 것이다. 슬픈 것 같지만 통곡을 하거나 울분을 토할 듯한 고통이 동반된 슬픔은 아니고, 단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에 가까운 슬픔이면서 동시에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은은한 기분 좋음도 동반한다. 그러니까 긍정과 부정으로는 도대체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인데, 그런 감정은 노래의 멜로디가 귀에 들어오자마자 즉각적으로 되살아나 가슴을 울린다. 그 감정의 기원을 알고 싶어 그 노래를 반복해서 계속 들어보지만, 내가 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것, 그리고 그립고 아련한 감정이 밀려온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심지어 노래를 부른 가수도 제목도 생소하고 - 이름을 들어본 듯한 느낌만 있을 뿐 - 과거 어느 시기쯤 들었던 노래인지도, 노래를 들던 순간의 장면도 기억나지 않는데, 노래의 멜로디와 그 노래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분위기만은 너무도 확실한 경험처럼, 바로 내 앞에 맞닦드린 현실처럼 실감 나게 다가오고 만다. 그리고 노래를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이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이란 걸 알게 되고 - 심지어 가수의 보컬 톤마저도 그렇다 - 그래서 더더군다나 궁금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과 감정의 원체험은 알 수가 없는 것이어서, 이내 포기하고 -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를지도 - 차라리 내가 좋아할 법한 음악을 하는, 내가 좋아하는 보컬의 톤을 가지고 있는 이 가수의 음악을 들어보자 싶은 마음에 유튜브를 검색했고, 역시나 그녀의 채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위키를 통해 그녀의 이력을 일별하고 - 나무위키, 위키피디아는 덕질에 또 얼마나 유용하던가! - 채널에서 제공하는 라이브 영상을 듣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데뷔 앨범도 들어본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 특히 라이브 영상! - 음악이 너무 좋아 이내 깊이 빠져들고 만다. 심지어 '아니 내가 왜 그동안 이 가수의 음악을 듣지 않았던가'하는 후회가 들 정도. 예전 같았으면 어떤 노래를 듣고 좋아진대도 그것이 어느 가수의 어떤 음반에 수록된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하다가 그저 지나쳐버리고 말았을 텐데 - 그런 적이 꽤나 많았다 - 이제는 당장 바로 찾아보고 얼마든지 들어볼 수 있고, 뮤지션의 이력과 음반에 대한 설명도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가 선사하는 선물 같은 기쁨인 것이다. 이 얼마나 덕질하기 좋은 세상인가!
글을 쓰다 보니 그래서 그게 누구의 어떤 노래인지를 아직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음악이란 주관적이어서, 게다가 감정의 체험이라는 것은 더더군다나 주관적이고 상황과 맥락에 좌우되므로, 이 노래가 누구에게나 나와 같은 강렬한 감정을 전해줄 것이라 약속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거창한 이유들을 걷어치우더라도 충분히 좋은 음악이니 추천 삼아 덧붙여놓는다.
미샤(MISIA)의 <everything>이란 노래로, 유튜브에 찾아보면 공식 뮤비도 있어 바로 들어볼 수 있다. 미샤는 R&B의 바람이 불던 1990년대 말 데뷔한 일본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디바형 가수로, 여가수로서는 최초로 일본의 5대 돔투어를 했을 정도로 자국 내에서는 꽤나 인정받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유튜브에 보면 그녀의 공식채널이 있고, 여기에서 다양한 콘서트 실황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이 영상들을 들어보길 권한다. 발라드도 너무 좋지만 R&B와 록, 재즈, 가스펠을 넘나드는 그녀의 음악 스펙트럼에 놀라게 되고, 엄청나게 쏟아내는 보컬의 에너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 미샤의 <everything> : https://youtu.be/aHIR33pOUv0?si=ODwsu9Z-ejvyllsz
말이 나온 김에, 유튜브를 통한 추억 여행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덧붙여 본다. 20여 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 그러니까 유튜브는 없고 트위터가 이제 막 사용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 트위터에서 일본의 어느 포크 뮤지션의 뮤직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포크 뮤지션이었고 기타 하나만 든 채 노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컬의 에너지와 파고드는 감성이 너무도 강렬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뮤지션이었다. 첨부된 영상은 친절한 설명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가수의 이름을 한자로만 표기해 놓았는데 노래가 아무리 강렬했어도 그 한자를 외울 수는 없었다. 다만 가수 이름의 한자가 세 글자였던 것만 기억한다. 노래 제목 또한 잊어버리고 말았다. - 일본 말을 기억할리가 없지 않은가 - 그저 그렇게 지나치고 나서 몇 주, 몇 달이 흘렀지만, 그래도 그 노래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아 음반을 찾아 들어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한자 이름이 세 글자로 된 남자 포크 가수의 음반을 사다 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이건 좀 너무 난감한 부탁이 아닌가 싶어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어떤 일본 포크 가수의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 일본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알고리즘이 일본 뮤지션의 영상을 랜덤 하게 띄워주곤 한다 - 그 음악이 너무 강렬하게 와닿아서 몇 번을 반복청취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20여 년 전의 그 포크 가수가 생각났고 혹시 그 사람이 이 사람인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우선 한자 이름이 세 글자라는 것은 동일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 일본에는 세 글자의 한자로 된 이름이 생각보다 많다 - 게다가 내가 지금 듣는 음악은 이 뮤지션의 비교적 최근 노래였기 때문에 당시 내가 들었던 노래와의 관련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너무도 궁금해서 언젠가부터 더 이상 쓰지 않던 트위터에 재접속을 시도했지만 - X로 이름이 바뀌었다 - 생각나는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해도 몇 번을 거절당했고, 급기야 회사에 메일도 보내 보았지만 본인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건조한 답변만을 돌려받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포기할까 싶었지만, 오기가 생겨 얼마 전 본 뮤지션의 채널에 들어가 그의 오래전 노래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뒤지다 보니, 데뷔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초창기 노래들이 뿜어내는 날 것의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예전에 들었던 노래의 기억에는 이미 멜로디가 남아있지 않았고 감상의 감흥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노래가 이 노래가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 노래에서 받는 감흥이 매우 유사하고 날 것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내 취향에도 맞았기에, 그때 그 노래가 맞다는 확신에는 거의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더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 그래서 그때부터 그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특히 초기 음반들을 찾아서 반복해서 들었다. 과연 그의 초기 노래는 최근의 정제된 감성보다는 훨씬 더 에너지가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주를 반복해서 듣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때 들었던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듣고 있는 이 음악의 멜로디가 아니라, 그때 들었던 멜로디가 떠올랐고 그 멜로디와 감성이 지금 이 노래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때 그 순간의 기쁨이란.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문제의 그 노래는 일본의 포크 가수 다카하시 유우(高橋優)의 <혼토노키모치(ほんとのきもち)>라는 노래다. 역시 유튜브에서 검색을 통해 손쉽게 들을 수 있다. ▷ https://youtu.be/f-YeHQqTIHo?si=Qm3aTSDbY9uUsosQ
신기한 경험이었다. 결국은 아무것도 얻은 건 없는 것 같지만, 그저 답답함이 해소될 뿐인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건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 줄 알았던 어떤 소중한 걸 다시 찾은 느낌이랄까. 땅 속에 묻어둔 보물을 다시 꺼낸 느낌이랄까. 그건 좋은 뮤지션을 발견했다는 것 이상의 감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환희로 그의 데뷔 음반을 꽤나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억이란 어쩌면 형태 없는 감정이나 흥분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우리의 경험 저변에는 그런 감정의 강이 흐르고 있어, 어쩌면 그것이 더 경험의 본질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이루고 있는 그 감정의 물결을 그저 흘려보낸 채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미샤의 그 노래를 통해 느끼는 그 아련한 그리움의 감정이란 어쩌면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던, 다시 건져 올리지 못했던 그 많은 감정의 물결들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그렇게 잃어버리고 말았을 감정의 바다를 이렇게 다시 일깨워주는 음악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그리고 어쩌면 음악이란,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감정의 흐름을 가장 많이 닮아있는 예술의 형태는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