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독서' #001 [독서=함께하는 것]

독서는 본래 '함께하는 것'

by 북서번트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만화방’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라면이라도 하나 먹으면 그보다 좋은 시간이 없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라 생각해온 그 시절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제가 만화방을 좋아했던 이유가 단지 만화가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만화책을 혼자 읽지만, 함께 보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이제는 만화책이 신앙서적으로 바뀌었고, 만화방이 독서모임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왜 책을 읽는지 생각해보면, 단지 책이 좋아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학구적이지 못한 저만의 취향일지 모르지만, 책을 읽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어느날 기독교 서점을 시작하고, 제가 좋아하는 책들로 서가를 채웠습니다. 서점 운영이라는 현실 속에서 ‘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지?’ ‘오신 분들이 왜 책을 사가지 않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아! 내가 좋아하는 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준비해야 하는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법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신학교에 가고, 신학서적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저는 만화방에서 함께 읽던 사람에서 혼자 읽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서점 운영’이라는 현실의 문제가 저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제가 좋아했던 만화방에 가던 시절의 제 모습을 찾도록 해 주었습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을 찾아보자!”


그때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원하는 책만 찾아보고 구입했었는데 베스트 셀러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 지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어떤 책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책을 출판하는지, 독자들을 어떤 책을 선택하는지 머리속에 떠올리며 신간목록과 베스트셀러 목록을 스크롤 했습니다.


그러다 ‘책의 선택 과정에서부터 함께 하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찾지만, 사람들이 보고 있는 책과 떠나서 선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동떨어진 채 나만의 독서라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일 것입니다.

독서는 본래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책'을 읽는 시간, 이해하는 행위 모두가 '나'만의 것일 수 있지만 독서를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깝게는 저자와 독자가 공유하고,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이 공유하는 것이며 '읽지 않았지만 공통의 정서와 환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독서입니다.

굳이 나의 책 취향이 독립적이라 주장하더라도, '나'의 환경이 '나의 읽기'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독서'는 어느 면으로도 '나'만의 것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독서는 본래 '함께'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결국 '함께 읽기'가 '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래 '함께'일 수 밖에 없는 독서는 '함께'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모든 읽기는 사유를 낳고, 사유는 '홀로' 간직하기보다 외부로 퍼져갈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아예 대놓고 '함께' 읽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서, 함께 읽길 잘했어.

이 말은 사실, 독서, 함께 읽기가 잘 읽는 것이라 말하고 싶은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