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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dit Dec 13. 2022

2023년 달력 펀딩 후기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제가 무사히 제작과 포장, 배송까지 마쳤다는 이야기겠지요...




이 밈을 오랜만에 써보고 싶었습니다. 굿즈 제작을 안 한 지 꽤 되었었거든요. 매번 실물은 서점이나, 배송되어온 도서 택배로만 받아보다가 제가 직접 엄선하고 편집하고 색감이 잘 나올지, 인쇄는 제대로 될 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니 예전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인쇄업체를 찾아보고, 배송업체를 알아보고, 포장지를 주문하는 등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작은 걱정과 설렘을 동반하고 있었기에 스트레스인지 두근거림인지 혹은 둘 다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나날들을 보냈네요.



요즘에는 포장까지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많이 있어서, 처음에는 아예 포장까지 맡겨볼까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직접 포장을 해서 좋았었습니다.



집으로 배송되어온 아홉 박스의 인쇄물들을 뜯느라 집안이 먼지와 종이며 비닐이며 쓰레기로 가득 차고, 개별 포장은 물론 물건과 송장 라벨까지 대조해가며 포장하느라 손끝이 모두 거칠어져도 좋았다고 회고하다니 재밌지요. 하지만 꼬박 삼일 밤낮으로 지루한 단순 반복 작업을 거치며 깨달았습니다. 하나하나 낱장으로 늘어놓으니 생각보다 많은 부수였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제 그림이 좋아서 주문을 하고 따뜻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각별한 경험을 다시금 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말 입니다만 저는 다시금 방황의 길에 들어선 참이었습니다. (이 브런치에 창작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이런 고민이라니...) 이것보다는 조금 더 잘 되어야 하지 않느냐 -정말 무책임하고 두루뭉술한 목표지요-같은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매번 창작의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자신 있게 제시했던 제 답이 진정으로 맞는 건지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만 그려내어도 괜찮을지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리멸렬한 고민의 나날을 보낼 때에 마침 굿즈 펀딩을 하고 포장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테이프와 유성매직이 필요해 찾았던 대형 오피스 문구 판매점에 가지런히 진열된 수많은 달력과 다이어리를 보았습니다. 이뿐만인가요, 구글에 '2023년 달력'만 검색해도 0.00001초 만에 셀 수 없이 많은 상품이 펼쳐집니다. 이 멋진 세상에서는, 수십, 수만 가지의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고른 물건은 자신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필요에 의해 구매하는 생필품이 아닌 이상 수만 가지 선택지에서 단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는 그것이 자신의 개성, 기호, 취향, 자신만의 우주, 또는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 주는 무언가라는 뜻입니다. 



상징성을 가진 누군가의 것을 차용해 자신만의 우주를 장식하는 용도로 쓰고, 그것이 반복되며 점차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니, 예술이란 실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지요. (조금 사족이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ai아트가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그린 세계를 선택해준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 그림을 당신의 우주를 표현해줄 매체로써 선택해주어 고맙습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려내는 그림을, 그리기 즐거워하는 모든 것들을요. 어어, 그렇게까지 거창하진 않았는데요.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선명하네요.



어쨌거나 다시 돌아와서, 그런 의미에서 참 좋았습니다. 어지럽혀진 공간을 치우느라 진이 빠지고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허리가 삐끗했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종종 굿즈를 더 만들어 볼까 해요. 저도, 그림을 구매해주신 분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정말 좋았거든요.



'세상에서 제딧님 그림이 가장 좋아요.'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신 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신 분의 취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다채로워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제 그림 같은 건 쏟아지는 굉장한 그림들 틈에서 빠르게 잊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작은 메시지 한 줄을 가지고 제 우주를 계속해서 가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어요.


 

언젠가 또, 제가 가꿔온 우주가, 당신을 장식할 수 있게 된다면 기꺼이 찾아와 주세요. 

저는 언제나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12월의 마지막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창문 밖은 설원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고요. 겨울이네요.

한 해가 가기 전 멋진 경험을 남겨주어 고맙습니다. 



종종 또, 여러 가지 예쁘고 재미난 것들, 

흥미로운 것들을 만들어서 가지고 올 때에도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22.12.13일 폭설주의보가 내린 날,

제딧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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