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선 Jan 04. 2023

창작자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3가지 덫

크리스천 창작자를 위한 복음 콘텐츠 가이드


첫 번째 덫, 내가 ‘주인’ 되고 싶은 마음


일반적인 사람들은 삶의 모든 일에서 내가 주인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이 당연한 인식이 뒤집힌 사람들이다. 우리는 끝없이 ‘내가’라는 중심에서 내려오기 위해 자아가 부서지는 길을 걸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들이다.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인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게 당연한 가치관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만일 이러한 가치관이 확실히 잡히지 않고 창작을 진행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의 아이디어로 시작하고,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완성했으며, 결과물이 성공하면 나의 노력 덕분이고, 그로 인해 수익이 생기면 모두 내 것이다. 어느샌가 쌓아 올린 바벨탑으로 나를 떠받는 하나의 왕국이 건설된다. 그 왕국의 왕이 된 자신에게, 교만이 물밀듯 넘쳐흐를 것이다. 어디에도 주님이 계실 곳은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는 영적인 지성을 높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무늬만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한 말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마 19:16-26)’의 반응처럼 거절하고 뒤돌아 갈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꼭 창작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주도적으로 행하고, 그 결과를 독식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 다 그렇다. 예를 들어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일의 모든 결과가 내 것이라고 여길 수 없다. 성공한 프로젝트로 얻게 된 명성, 수익, 영향력은 회사가 대표로 갖게 된다. 그 일을 수행한 사람은 마땅한 보상을 얻고 조직 내에서 인정받을 뿐이다. 그렇지만 일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 프로젝트와 회사를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다. 그래서 회사 일을 할 때는 전적으로 ‘내 일’이라고 여기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창작은 그렇지 않다. 그 시작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끝도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맺어진다. 성공의 크기에 따라 얻는 결실도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주님이 하셨다’라는 마음의 중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창작을 바탕으로 수행되는 모든 일의 결과가 ‘나’를 향하고 있으니, 그 시선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가치관에 금세 휩쓸리고 만다.




두 번째 덫, ‘인정’ 받고 싶은 욕구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나를 대변한다. 그 일을 수행하고 만들어낸 데에는 그 사람의 성품, 능력, 가치가 담긴다. 성품은 그 일을 얼마나 사람들과 문제없이 성실하게 완료했는지로 볼 수 있다. 능력은 그 일이 얼마나 완성도 높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는지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세상의 성공 기준은 여러 가지 척도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과 그 일이 목표한 지점까지 충분한 영향력을 만들어 냈는가로 기준을 잡는다. 마지막 가치는 그 일을 얼마나 사람들이 공감하고 필요로 하는지로 여긴다. 가치 판단은 한순간의 돈벌이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 일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로 파악된다. 이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거나, 사회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가 행하는 크고 작은 일마다 성품, 능력, 가치가 담겨있다. 내가 한 일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결국 일을 인정받는 것은 나의 성품, 능력,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받는 긍정적인 평가는 상대적인 우월감을 얻게 해 준다. 일의 인정은 ‘내가 나로 굳건히 확립되는’ 존재의 자아실현을 이뤄가게 해주는 엔도르핀이 된다. 이 일은 꼭 회사의 업무 성과를 뜻하지 않는다. 주부에게는 가사일, 교회 안에서 작은 봉사일, 나 혼자 진행하는 창작 등 내가 맡은 역할에 따라 수행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뜻한다.


이때 창작에서 인정 욕구는 좀 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창작자에게는 인정 욕구는 창작을 계속 진행하게 해주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창작은 창작자에게 고유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주부의 가사는 결혼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회사의 업무도 내 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사실 다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이 그렇다. 내가 해서 더 특별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내가 아니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 시스템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이 이를 반추한다. 하지만 창작은 그렇지 않다. 그 작가가 아니면 그 창작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확실한 전제는 그 일의 가치를 곱절로 높여준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있어 자신의 전문 분야로 창작한 작품은 분신과도 같아진다. 더욱이 작품에는 작가의 가치관, 신념, 정체성, 자기 투영과 더불어 ‘성품, 능력, 가치’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크리스천 창작자의 입장으로 넘어가 보겠다.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정욕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크리스천 창작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갈림길에서 괴리감과 갈등을 겪는다. 인정 욕구를 내려놓고 낮아져야 하는데, 그러면 창작이 동기마저 상쇄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정 욕구를 저 스스로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게 맞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완전히 없앨 수 없고, 그럴 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 창작자에게 중요한 자세는 그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의 대상을 바로 세우는 것에 있다고 본다. 즉, 피조물인 세상이 아니라, 창조자인 하나님께로다. 그럴 때 사명이 분명하게 세워지고 바른 목적을 지닌 창작을 진행할 수 있다. 이 방향을 바꾸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세상과 하나님은 대립하는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예술과 창작은 세상의 결실을 따라가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샘솟는 길이다. 만일 내가 성경의 가치관으로 먼저 확립되지 않고 성공하게 된다면, 성공은 그만큼 큰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세 번째 덫, 창작 활동으로 벌고 싶은 ‘많은 돈’


창작 활동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 이상향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이다. 정말 순수하게 돈을 떼어 놓고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때때로 가능은 하겠지만 매우 희박하다고 보인다. 예술에 모든 피와 땀을 쏟아붓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게 오직 삶의 이유가 아니라면 말이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돈이 우상이 돼버린 위협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생계유지 비용이 필요한 법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돈이 있어야 생활이 되는 만큼, 우리는 돈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돈은 너무 없어도 걱정이고, 너무 많아도 문제다. 어떻게 사용하고 소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돈 관리에 참된 지혜가 필요하다.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창작자 대부분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생계와 연관된 작업을 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만드는 작품으로 돈을 벌기를 원한다. 지금 당장 수익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은 그런 작품 활동을 전문성을 높이는 경력이 되는 과정으로 접근한다. 더 나은 미래에 이익을 얻길 꿈꾸면서 말이다. 혹은 그런 경험과 경력이 쌓이고 쌓여 어떠한 방편으로든 인생의 빛을 보게 해 줄 거라는 기대를 놓을 수 없다. 그 모든 기대는 다시 돈과 인정 욕구로 연결된다.


크리스천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복음적인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열정 아래에 수익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 생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창작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돈이 있어야 생활도 하고, 돈이 있어야 창작도 지속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문제는 돈이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있을 때 일어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돈은 필요한 물질이지만, 돈이 주인이 돼서는 안 된다. 돈의 우상은 수시로 자라나기 때문에 계속해서 늘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잡초 같은 우상의 싹을 솎아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받은 은사와 달란트를 지혜롭게 경작해나갈 수 있다. 

주님은 이 3가지 덫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운 창작자가 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단련시켜 나간다. 

그 길을 잘 따라가다 보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창작자가 될 수 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세상의 덫은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은 나의 것? 창작의 주인 의식 바로잡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