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집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물의 집, 까사 델 아구아


원형의 마당에
물이 채워져 있을 줄 알았습니다.
벽분수에도 물이 없었고
길게 흔들리는
당신의 그림자만
황량하고 쓸쓸했습니다.
물의 집에
물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따라
물이 없는 물의 집에 들어와
늦가을처럼 서성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작은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파란색들이 겹겹이
천장으로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하늘로 가는 물의 계단이더군요
목을 꺾어 그것을 보며
당신이 탄성을 지를때
아, 그때 나는 보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작은 어깨 너머로
멀리 내다보이는 바다,
온통 물이었습니다
그건 출렁이는 축복이었습니다


변시지 / 고립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추사유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