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전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우리의 자전(自轉)


우리의 일용할 술자리를 위해

아내들은 일찍부터 자리를 뜨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우리는 엄숙과 긴장을 분별하며

소주를 기울인다.

우리가 비웃고 혐오하는 개인의 종말처럼

술기운은 범람하고

개인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우리의 자전을 위해,

훌륭한 휴식과 균형을 위해

술잔은 어김없이 부셔지는데

지난 시대 유골들에 대한 기억처럼

서로 섞이고 교차하는 우리의 초라한 파산,

그리고 밖에는 청명한 일상.

술자리를 털고 우리는

피의 희석을 염려하며

죽음에 대한 위대한 시를 쓰지 않으면

한 시대가 몰락하리라 확신해보지만

묵종할 줄 모르는 술내음은 비척거리고

자갈돌처럼 드러나는 구토,

지금은 한낱 수척한 시간,

아아, 우리의 숙취는 어째서

우리의 영혼을 가리고

어째서 깨어남이 발작적이냐,

이탈하는 우리 자전의 궤도, 궤도.


/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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