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고통이란 긴요한 것인가. 네가 가고 빈 곳에
줄지은 고사목의 유해처럼
창살 그림자만 윤곽이 자세하다.
저녁에 들면서 바람은 더 음울하게 동요하고,
형형색색의 송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제만 해도 이보다 포근한 응시가 있었다.
회랑의 끝에서 그대 가슴에 기대어
나 자신 걷잡지 못하던 위안.
그러나 밤은 오고, 구근들은 조용히 얼어붙고
이제 슬픈 선택처럼 뉘우침은 남아
매혹적인 우파는 사라졌는가.
삶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백랍잔 속에서 식어가는 두어 모금의 녹차,
차를 데울 수 있을까.
식은 차를 데우면 이별은 그치고
생은 회복되어 기약도 새로울까.
네가 가고 빈 곳에 버려지는 식은 차의 물무늬,
번번이 출렁이는 너의 도시들.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