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심청가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모든 심청가


바람 부는데 심봉사 동냥은 왜 그리 경쾌한지

마누라 묻어 지팽 막대 흩어 짚고

죽어라 썩 죽어라 어린 것 방바닥에 미닫치지만

산다는 것이야 드세고 드센 희망이지

젖동냥 풍년이니 무정세월인가

심청이 일취월장 자라

한참을 가도 육지는 없고 너울너울 큰 바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는 여봐라 청아

인당수는 금빛의 창, 황급하고 몽롱한 물보라

이 너른 바다에 떠억 도착하고 보니

팔려온 처녀들은 심청이 홀로만 아니고

흑단 같은 머리채 날리고 치맛자락 날리며

세상의 눈먼 이들을 위해 모두 발돋음하는구나

위대한 투신의 시대는 지나고

이제 눈을 뜨는 것은 아무런 경이도 아니리

불운이란 무엇이겠느냐 눈뜨든 눈멀든

없는 것으로부터는 없는 것만이 남는 것

몽은사 화주승 꼬드김에 권선의 적어

이 일을 어쩔 거나 백해무책에

모든 심청이 바다에 몸 던져보아도

풍덩, 빠진 자국 아주 잠시 보일테고

바람 부는데 세상은 캄캄 표류중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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