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제주도 사람들의 일렁이는 운명을 관장한다는
어느 부잣집 셋째 딸 가믄장 아가씨는
열 다섯 꽃다운 해에
부모로부터 효 시험을 받았다고 하네.
너는 누구 복에 사느냐는 추궁에
하늘님, 지하님, 아바님, 어머님 덕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배꼽 밑 선그뭇 덕에
잘 산다고 힘주어 고하자
이 망측한 대답에 발끈한 부모는
그녀를 불효로 단죄하고 쫓아냈다고 하지.
그런데 진정 소망스러운 것은
쫓겨난 가믄장 아가씨는
마소 키우는 씩씩한 마퉁이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혼을 성사시켜
배꼽 밑 선그뭇 덕에 큰 부자 되었다는 사실이야.
한편 부모는 딸 버린 죄로
문지방에 쓰러져 장님 걸인이 되었다는데
여기서 눈 여기게 되는 것은
배꼽 밑 선그뭇 덕에 큰 부자 된 아가씨가
희망이 거세되었던 부모를 눈뜨게 하고
다시 부자가 되게 해주었다는 사실이지.
이쯤해서 더욱 깊이 숨 들이쉬게 되는 것은
스스로 타고난 배꼽 밑 선그뭇 덕에
모든 일을 튼튼히 대처하고
끝내는 화해까지 성취한 가믄장 아가씨처럼
나도 내 복에 사는가 하는 의문이야.
더욱이 내 배꼽 밑엔 선그뭇도 없는데.
나부 /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