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의 빛] 사별의 힘

by 양진건

사별의 힘

여든을 앞둔 노시인이

흰 잇바디를 드러내 말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맞는다는 건 위기죠.

하지만 살아가려면 위기를 극복해야 하잖아요.

때문에 제 시는

죽음을 이기는 시라 할 수 있죠. **”라며

시큼하게 웃었다.

제주 거상, 김만덕이 12살에 부모와 사별하고,

형제들과도 죽을 때까지 이별하고

관가 기생이 되어, 마침내 상인이 되면서

끝내는 노시인처럼

죽음을 이기는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일까.

나이 들어 갈수록 그녀의 눈자위는

감을 때나 뜰 때나 한가하도록 평온했고,

분명 그 평온함이 무기였을 게다.

그녀의 많은 재산을 고통뿐인 뭇사람들에게

크게 내어줄 수 있던 힘은

달관 해탈도 아닌

문득, 그 뼈저린 평온함이었을 다.

오름 위 저녁 하늘로 스며들던 갈까마귀처럼

만 황망히 떠나버렸을 때

빈자리에 남았던 그 낭떠러지 같은 평온함,

죽음을 이기는 평온함.

그 팽팽한 힘.

** 시인 황동규님의 서울신문 인터뷰 참조



정지란 그림

매거진의 이전글[김만덕의 빛] 금강산 유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