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앞둔 노시인이
흰 잇바디를 드러내며 말하길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맞는다는 건 위기죠.
하지만 살아가려면 위기를 극복해야 하잖아요.
때문에 제 시는
죽음을 이기는 시라 할 수 있죠. **”라며
시큼하게 웃었다.
제주 거상, 김만덕이 12살에 부모와 사별하고,
형제들과도 죽을 때까지 이별하고
관가 기생이 되어, 마침내 큰 상인이 되면서
끝내는 노시인처럼
죽음을 이기는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일까.
나이 들어 갈수록 그녀의 눈자위는
감을 때나 뜰 때나 한가하도록 평온했고,
분명 그 평온함이 무기였을 게다.
그녀의 많은 재산을 고통뿐인 뭇사람들에게
크게 내어줄 수 있던 힘은
달관도 해탈도 아닌
문득, 그 뼈저린 평온함이었을 게다.
오름 위 저녁 하늘로 스며들던 갈까마귀처럼
부모만 황망히 떠나버렸을 때
빈자리에 남았던 그 낭떠러지 같은 평온함,
죽음을 이기는 평온함.
그 팽팽한 힘.
** 시인 황동규님의 서울신문 인터뷰 참조
정지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