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필연

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by 양진건

어떤 필연


생선회를 뜨다가

손가락을 벴다.

하얀 생선살에 번지는 피가

생선의 것인지, 내 것인지,

호들갑 떠는 아내의 것인지.

혼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가만히 내다 보면

종내는 그것이 피인지, 눈물인지, 땀인지

도대체 분간이 안 선다.

벌겋게 벌어진채기에

담뱃잎을 쑤셔놓자

통증이 살 속에 박히면서

손이 아픈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입술도 바싹 타들고

아내마저 표정이 구겨진다.

아니다. 결코 혼돈이 아니다.

내 피, 내 통증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생선회를 뜨는 동안은

간직해야 할 필연이다.

검붉은 필연,

두렵지만 그런 필연이 있다.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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