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천둥번개가 치던 날이었다
“어떻게 서점을 하게 됐나요?” 수백 번쯤 들었던 질문입니다.
대답은 번번이 ‘얼떨결에요’입니다.
책을 한 권 냈습니다. 20만권이 팔렸습니다.
출판 계약을 할 당시에 저는 큰 수술을 하고 겨우 살아난 참이었습니다.
정상생활이 가능할 확률은 1~3퍼센트라고 했지만 놀랍게도 괜찮았습니다.
다만 약을 많이 먹어 매일 몽롱했죠. 오래 해왔던 라디오 작가 일을 겨우겨우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살아는 있지만 ‘이대로 나의 사회적 존재감은 사라지는 게 아닐까’ 불안해질 무렵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같이 책을 보내지 않으시겠습니까?”
바로 며칠 전 꿈에 한 사람이 나와 책을 한 권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사진과 글이 같이 있었죠.
꿈 속의 저는 말했습니다. “이병률 선배님이 그러는데 이제는 여행 이야기 말고 사랑에 대한 에세이나 소설을 쓰라던데요.”
김동영 작가가 걸어나오더니 머리를 긁으며 말했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런데.”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한 장면입니다.
며칠 뒤로 미팅이 잡혔습니다. 광화문 스타벅스.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던 편집자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꿈 속에 만난 사람처럼 키가 훌쩍 크고 여윈 사람이었죠.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였습니다.
봄에 만난 사람과 가을에 책을 완성했습니다. 제목에는 꿈의 단어였던 ‘그렇긴 한데, 그런데’ 대신 ‘그래도’가 붙었습니다.
가을의 기적. 2013년 9월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말입니다. 매주 재쇄를 찍어야 했습니다.
대형서점 베스트 10위 안에 들었지만 흔한 북토크나 사인회 한 번 하지 못했습니다.
수술 후 1년 반이 지났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1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래도’ 에 이어 ‘다시’가 붙은 책이 나왔습니다. 속편에 해당했죠.
편집자와 저는 여전히 함께 였습니다. 책이 나오고 편집자는 아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일을 좋아하던 그녀는 집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울적하다 했습니다. 종종 밖에 나오고 싶다 하였어요.
7평짜리 작업실을 하나 얻었고 저에게는 큰 책상 하나만 필요했습니다.
남은 공간에는 책장과 또다른 큰 책상이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서점을 하셔야 해요.”
편집자가 뜬금없이 던진 말로 길 하나가 열렸습니다.
저는 사업이나 장사에는 재주가 없을 사람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집과 학교 외에 가장 자주 가던 곳이 서점이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일 정도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작업실은 이미 얻었고 편집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와서 몇 시간 머물다 가는 것이 전부였으니 빈 공간을 이용하자 했습니다.
‘다시’로 시작하는 책도 꽤 사랑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메일함에 편지가 날아 들었죠. 대부분 사랑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몸이 제법 회복되어 방송 일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답해주기 어려웠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간도 부족했지만 타인의 사랑에 이래라 저래라 말을 보태기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책은 권해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당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을 권해드립니다’
문장 둘로 시작했습니다. [사랑에 관한 주말 서점, 드로잉북 리스본] 이라 우리 책방을 소개했습니다.
서점 세팅은 편집자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만,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는 걸 힘들어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친구가 같이 하기로 해서 친구는 드로잉씨, 저는 북씨를 맡기로 한 건데 시작도 전에 친구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난임에 노산이었던 친구는 누워만 있어야 해서 혼자 남았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살 때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서점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서점을 열었습니다.
처음 문을 열던 날엔 편집자도 함께였습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청소를 하였습니다.
드로잉씨가 선물로 남기고 간 이젤 위에 스케치북을 얹어 간판을 대신했습니다.
오픈 시간에 맞춰 천둥번개가 쳤습니다.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런 날 누가 오겠어. 우리끼리 놀자”
빔프로젝터로 벽에 영화를 한 편 쏘았습니다. 편집자가 고른 작품이었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도서관 장면만 또렷합니다. 벽에 가득 책장이 뿌려졌을 때, 문이 열렸습니다.
까만 원피스를 입은 여인. 뒤에 덩치 큰 남자 둘이 까만 정장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들어가도 되나요?”
“당연히요. 어서 오세요.”
여인이 걸었습니다. 배가 부른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 두 분도 어색해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요.
여인은 배 위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제가 2주 뒤에 출산이에요. 이제 당분간은 못 돌아다닐 것 같아서요.
그 전에 꼭 여기 와 보고 싶어서 남편을 졸랐어요.”
여인이 뒤에 서 있던 남자를 돌아보았습니다.
“여기 꼭 와보고 싶다고 며칠을 얘기하더라고요. 저희 집이 수원이라 멀거든요. 딜을 했어요.
여기 데려다 주면 친구랑 놀 수 있게 해주기로요.”
남자는 옆에 선 친구를 보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럼 얘기들 나누세요. 저희는 놀다 올게요.”
1시간쯤 지나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커다란 빵 봉투가 들려 있었습니다.
“식사는 잘 하시고 일하세요.”라며 두고 간 봉투 안에는 500ml 흰 우유가 담겨 있었습니다.
“설마 우리가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만큼 가난해 보인 건 아니겠지?”
“남편분 표정 봤어요?”
“불쌍해하는 건지, 걱정을 하는 건지.”
“아까 친구분이 나가면서 그러던데요. ‘걱정 하지 마. 니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베스트셀러 작가라잖아. 여기서 나갈 땐 외제차 타고 갈 지도 몰라.’”
걱정할 만했습니다. 15년쯤 된 아파트 상가. 오래된 계단을 올라오면 2층에는 월 3만원에 이용 가능한 동네 휘트니스가 있다. 계단참에는 세탁업체 가져가라고 타월과 운동복 뭉치들을 내놓았습니다. 한층 더 올라오면 낡은 아동용 책상이 복도에 나와 있었죠. 어린이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갑니다. 건너편엔 동네치과. 틀니를 한 백발의 어른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요. 건너에 간판 하나 없는 철문을 노크하고 들어서면 책장에 책은 20종도 안됩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서점을 한다는 걸까 싶었을테죠. 먹고는 살 수 있을 걸까 싶어서 “저는 1년에 책 한 권도 안 봐요”라면서 억지로 몇 권을 사들고 나갔을 겁니다. 수원까지 먼 길 가면서 내내 덕분에 친구랑 잘 노긴 했는데 이상한 곳에 다녀왔다 어리떨떨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2번 더 서점을 열었을 때 메일이 왔습니다. 첫손님으로부터였죠.
엄마를 닮아 눈이 총명한 간난아이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그때 사간 책을 읽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어요.
2016년 천둥번개치던 첫 날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파트 상가 3층 한 달에 한 번 열던 곳이 1년 반 뒤에는 1층으로 내려와 매일 여는 서점이 될 것을,
라디오 작가였던 정현주가 정서점이라는 별명으로 4년을, 5년을 살게 될 것을
저 자신조차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