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구 To 광재 : 구윤서라고 합니다

by 서점 리스본

광재님께.

안녕하세요. 함께 편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구윤서라고 합니다.
편하게 구, 라고 불러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하고 나서 메일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에게 쓰는 편지라, 적절한 단어들을 고심하다 그랬나봅니다.


첫 마디는 역시나. “안녕하세요."


이 말을 의식하고 뱉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가 무탈한 지 살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첫 문장이, 썩 마음에 드는 순간입니다.


반대로 저에게 무탈하냐 물으시면 꽤 오래 고민 할 것 같습니다.

구름 같은 고민들이 태풍을 불러올지도 모르거든요.


저는 올해로 스물 두 살이 되었습니다.

삼선 슬리퍼에 떡꼬치 하나 들고 하교하던 동네 친구들의 연락이 가장 뜸해지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려는 몸짓이 처절합니다.

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며 긴긴 학생 생활을 이어가는 친구도, 일찍 취업해 3년차 사회인이 된 친구도. 군대에 간 친구도, 알바 왕이 된 친구도, 유학을 간 친구도, 자기 사업을 시작한 친구도

모두 같은 반에 같은 학교를 다니던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행보를 응원함과 동시에, 내가 어영부영 보내온 시간들을 알차게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성실이라는 단어를 반증하듯 사는 그들에 반해

저는 ‘무엇을 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책을 읽습니다.


남들이 보면 베짱이에 가까운 나의 이십대가 경력이 될 수 없음을 실감합니다.

아무리 모집 공고를 뒤져보아도 “철학책이나 시집 좋아하시는 분 우대 합니다.” 와 같은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스무살이 되던 해에 제가 사랑하던 공간에서 성년식을 했습니다.

그 해 스무살이 된 사람들과 둘러앉아 각자 쓴 성년 다짐을 낭독하며 서로를 축하하고 응원하는 자리였습니다.

서로의 스물에 대한 생각들을 들으며 울컥을 여러번 삼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의 혼란스럽고도 오롯하고 곧은 마음들이 참 예쁘다, 생각했었습니다.


초라하고 짧았던 스물의 다짐은, 그 때와 지금의 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불어오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애매한 위치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해온 것도 없이 그저 시간의 축적으로 성인이라 구분지어지는 것이 어색하고,

이런 내가 어른이라면 그 누구도 어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다 컸으니 한 사람의 몫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와

‘아직 어리니 더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것 하라’는 장단에 어떤 춤을 출 지 고민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발을 내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야 춤이라 할 수 없는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겠지요.


성년식에서 읽었던 다짐 몇 줄을 마지막으로 편지를 줄입니다.


너무 중구난방으로 쓴 글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우리의 첫 만남을 오랜 고민으로 시작하는 것이 무척이나 설레입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편지 때까지 요즈음 날씨 처럼 파란 기분이시길 바랍니다.


“스물입니다. 모든 것들이 애매하게 나를 타고 지나갑니다. (중략) 오롯이 나를 위한 스물을 보내겠습니다.”


2021년 04월 18일, 일요일 아침. 광재님께. 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