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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Feb 09. 2022

우정편지] 마롱으로부터 물속깊이님께

열두 번째 편지 _  2022년 해오름달 31일

“세상은 온갖 기대로 가득하다. 당신에게 용기가 있다면 그러한 기대에 개의치 않고 골칫거리를 기꺼이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물속깊이님 편지 읽고 생각나는 문장이 있어서 서점 리스본 2월 비밀책을 꺼냈습니다. 넓적한 포스트잇을 붙인 곳에서 만난 문장인데, 어쩌면 물속깊이님도 같은 곳에 포스트잇을 붙였을 수도 있겠네요. 사울 레이터 전시를 다녀오셨군요. 전해주신 이야기에 사진과 피크닉에 기대가 더욱 커졌습니다. 저는 진즉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3월에 예약을 했습니다. 아니, 그새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도 보셨다니요. 1월에 글은 못 썼었어도 알차게 보내셨네요. 여기까지 쓰고 ‘알차게’에 아직도 연연해하는 제 마음을 만났습니다. 하루를 그럭저럭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면서도 예전 습관이 남아 있네요. 차차 좋아질 테니 이 또한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봄이 지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니 역시 절기(節氣) 물속깊이님!!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 노르망디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로부터> 책에서 봄의 기척을 느꼈어요. 작년에도 <DAVID HOCKNEY – The Arrival of Spring, Normandy, 2020> 책은, 봄에 찾아왔는데. 아, 그렇다고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읽은 것은 아니랍니다(‘언제나’가 ‘부사’가 참 반가워요). 기척만 느끼고 도서관에 희망 도서로 신청했어요. 스스로 욕심이 없는 편이라 여기는데 책은 좀 예외였어요. 책값이 비싸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조간에서 신간 소식을 읽자마자 주문할 때도 많았으니까요. 요즘은 정말 읽을 만한 책인가 하며 시간을 두고 있죠. 그리고 올해는 희망 도서를 이용해보려고요. 하루 일과 중에 일 순위는 운동과 산책, 이 순위는 매일 글쓰기, 삼 순위는 그림 그리기와 책 읽기로 배분한 것도 이유가 될 거에요. 얼마 전에는 <윤형근의 기록>을 너무 비싼데 괜찮을까 염려하면서 신청했는데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았어요. 아껴본 후에 그래도 갖고 싶으면 그때 살 계획입니다.


‘통영 일기’가 마음에 드셨다는 말씀에 다시 읽어봤죠. 차분차분 정성스러운 일기입니다(^.^). 남편과 저는 한가로운 여행을 좋아해요. 오전에 동네 산책이나 가볼 만한 곳에 들리고 나면 오후에는 낮잠을 자고 시장을 다녀오고 저녁 산책 후에는 각자 할 일을 한답니다. 그러니 여행지에서 일기 쓸 시간은 충분해요, 아니 넘친다고 할까요. 낮잠을 안 잘 때나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일기를 쓰곤 했어요. 매일 글쓰기를 하니 여행 와서 일기를 쓰네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일기가 응원으로 느껴졌다면 그것은 일기 쓸 때 제 마음이 즐거워서 그렇지 않았을까요. 통영 다녀온 지 일주일 즈음 지났는데 마음 한 자락은 그곳에 있어서 색연필 그림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어요. 다음에 통영에 간다면 윤이상 기념관에 가 볼 생각입니다. 요즘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1956-1961 /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을 읽고 있어요. 옥색 표지가 어여쁜 책인데 1956년 6월 25일 편지에는, 뤽상부르 공원을 지나 알리앙스에 간다고 써 있어요. 아, 또, 뤽상부르 공원이네, 부럽네 했답니다. 날짜에서 한국전쟁이 보여서 더욱 그랬을 거예요. 윤이상은 자식들 공부시키고 여생은 신선처럼 살자면서 통영 앞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 조그만 집을 짓거나 사든지 일 년에 두 번은 그곳에 가서 고기나 낚으며 살자고 합니다. 편지 읽으면서 그가 동백림 사건으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것을 알아서인지 인생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또 확인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클래식은 문외한이라 윤이상 기념관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그냥 둘러보고 싶어졌어요. 편지는 은근히 힘이 센 가 봅니다. 눈이 온다는 남편 말이 뻥인 줄 알았는데 진짜 눈이 오네요. 설날 앞두고 눈이 오다니,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가로등 아래로는 더욱 운치 있게 내려요. 물속깊이님에게 눈이 온다고 연락하고 싶은 밤, 2월 비밀책 문장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 떡국 맛있게 드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아, 편지는 천천히 쓰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물속깊이님과 오래오래 편지를 주고받을 거라 급할 게 없거든요. 2022년 해오름달 31일. 마롱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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