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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Jul 12. 2022

우정편지] 물속깊이로부터 마롱님께

2022.7.11

, 거대한 온실 속에 있는 기분이네요. 칠월 상순에 이렇게 더웠던 적이 있던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더위입니다. 카페에 가면 고민하지 않고 아이스를 주문하는,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휴가>(안녕달)  바다가 생각나는, 어느새 7. 여름이, 마침내, 와버렸습니다.

안부는 예의지만, 상대방 컨디션을 모르는 채로 물을 때면 예의가 아닌 것도 다는 편지글에 한참 머물렀어요. 그렇구나, 그렇지, 끄덕이면서요. 사실  그랬거든요. 괜찮다고 답할 수도 괜찮지 않다고 답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는요. 울고 싶은데 마음껏  수는 없는, 그렇다고 웃어지지도 않는 우스꽝스러운 상태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마롱님이 물어봐 주시는 안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건네는 인사인지  아니까요. 적어주신 바람대로, 제가  안녕해지기를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 더불어 마롱님의 안녕도요.

빠진 나사는 하나이자  여러 개였던 모양이에요. 근래  벅찬 일이 있었는데요. 편지에 온전히  수는 없지만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랄까요. 삐그덕, 휘청,  그런 수식어들을 달고 있긴 한데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은 가고 있으니 참말 다행입니다. 부러 바쁘게 지냈어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느라 멈췄던 일들을 하나씩 시작하면서요. 영화를 보고(<헤어질 결심>  번이나 보았다지요) 공연에 가고 이러저러한 북토크도 기웃거리고. 평소라면 굳이 가지 않았을 자리에도 기어이 가서 앉아 있는 식이었지요. 모든 사람들이 와아, 웃고 있는 공간에서 혼자 글썽이는 마음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 도망치고 있구나. 마주해야  것은  뒤에 두고 엉뚱한 곳으로, 그것도 아주 열심히 도망가고 있구나 내가, 하고요. 직시하지 못해 질식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마음. 제가 이래요. 이렇게나 늦됩니다.

지난주는  수학자 이야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어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 이야기인데요.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그가 시인이 되려 했다는 말에 괜히 반갑고, 즐기면서 하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 상상해봤어요. 선한 인상으로 전한 사려 깊은 말들   마음에 오래 머물렀던  “스스로에게 친절하라 말이었습니다. 끊어진 관계 앞에서 그게   탓인 것만 같아 끊임없이 자책하던 중이라서였을까요.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수학자의 말이 포옹처럼 따뜻했습니다. 지금 제일 보듬어 줘야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자꾸 잊어요. 정작 잊어야  것은  붙잡고 있으면서 말이죠. 제가 이래요. 이렇게나 어리석습니다.

요즘 매일 저녁 걷고 있어요. 한강변을 걸으면 강물이나 노을에 넋을 놓게 돼서 코스를  바꿔서요. 작은 공원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내키는 대로 걷는 식인데, 처음엔 삼십 분이  될까 말까 했던 산책길이 어느새 꼬박  시간은 채워지네요.   하겠다는 대단한 결의는 아니었고요. 감당하기 힘든 생각, 그도 아니라면 몸무게라도 줄여보자는 심산이었는데생각은 그렇다 쳐도, 몸무게도 변함없을 줄이야!   씩씩하게 걸어야겠습니다. 더운 공기 속을, 촘촘한 빗방울 사이를 걸으며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공원에 찍혔을, 아마도 점들일  발자국을 쭈욱 이으면 어떤 무늬가 될까, 하고요. 그걸 그려볼  있을 때쯤이면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중언부언 무슨 말인지 모를 편지가 되었네요. 백스페이스 위에 검지를 올려놓고 망설이다 그냥 보내기로 합니다. 2022 7월의 저는 아무래도 이렇게밖에는 쓰지 못할 모양입니다. 대신, 근사한 문장을 덧붙일게요. 언제나 그랬지만 유독  힘이 되고 있는, 사모해마지않는 김연수 작가님의 문장입니다.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따끈따끈한 신작 <진주의 결말>에서 작가님은 이렇게 적으셨어요.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어지러운 제 발자국은 지금 방향을 찾는 중인가 보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 기다려 주자고, 누군가에게는 답답해 보일지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내게 친절하자고, 걸으며 생각했어요. 고백하자면, 어디서든 달을 찾아내는 재주가 제게는 있으니까요. 마롱님은 오늘 스스로에게 얼마나 친절하셨나요. 저는 어땠냐고요? 모름지기 계획은 내일부터, 가 제맛 아니겠습니까.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할 내일을 기대하니 슬쩍 웃음도 납니다. 뜨거운 여름, 그늘 같은 순간이 우리에게 있기를. 평안하세요 마롱님.

2022년 7월 11일, 물속깊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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