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by 예솔

스토너와 나는 정반대였다. 나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고 늘 무언가 기대하고 좇는다. 스토너는 느끼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원하지만 먼저 손 내밀지 않았다. 스토너의 인생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과 결혼, 단 두 가지였다.



평생 아버지의 통제 아래 살았던 이디스는 결혼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 스토너와 결혼했지만 자유를 얻지는 못 했다. 스토너의 무심함과 방관에 이디스는 점점 히스테릭해진다. 각자 나름대로 힘겹게 싸웠지만 서로 닿지는 못했다.



어쩌면 스토너의 인생에서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처럼 순수한 열정을 갖고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고, 강의에 최선을 다했다. 교육자로서의 삶이 그의 본체인 듯했다.



대학원 시절, 친구 매스터스는 술집에서 핀치는 무능력하며 실패자라고 하고, 스토너에게는 몽상가이며 광인이라고 규정한다. 이 대화가 소설 초반에 나오는데 그들은 그대로 변하지 않고 살아가다가 소설이 끝난다. 핀치는 자기만의 철학 없이 제도 안의 권력자가 됐고, 스토너는 세상의 논리를 끝끝내 거부했다. 무엇이 틀리고 옳은지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핀치의 세속적인 모습이 멋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높은 지성과 이상을 갖고 타협하지 않은 스토너의 삶은 참 고단해 보였다.



삶의 끝에서 스토너는 자문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자조일까, 자책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후회를 하지만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아마 그 순간의 최선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최선이 늘 최고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스토너는 지나치게 무던하고 무심하고 그냥 살아있기 때문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의 그의 회고를 읽다 보면 그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부딪히고 도망치고 고통 받으며 최선을 다해 살았구나, 싶었다.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인생처럼.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 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죄책감이라는 편안한 사치품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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