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mez-vous Brahms...
"남자든 아이든,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녀를 필요로 하는 이, 잠들고 깨는 데 그녀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이라면.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17p)
사랑에 목매던 시절을 들킨 듯한 문장이었다. 해결책을 알 수 없는 갈증과 결핍에,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다독여주고 들여다봐 주었으면 했던 마음이 떠올라 혼자 있는 폴이 더 쓸쓸해 보였다.
줄거리만 보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플롯 자체는 흔하고 뻔하다. 그런데 사강은 당사자도 눈치채지 못했을 법한 심리까지 짚어낸다. 사랑 혹은 연애 마스터였을까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미묘하고도 모순적인 남녀 관계를 잘 묘사했다. 같은 여자여서인지 폴의 이기적이면서도 자기연민적인 태도가 너무나 공감됐다.
결말을 보고 양귀자의 <모순>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까이 실감하게 하고 자신의 열정을 끄집어내는 상대를 선택하지 않는다. 독자의 입장에선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나'라는 말이 나오는 선택이다. 뜨거웠던 관계는 잠깐의 불꽃처럼 끝나고 편안한 관계에 자리잡는다. 찰나였기 때문에 뜨거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둘이 공존할 수 없음이 아쉽다.
파리에 있는 그 누군가에 대해 그가 아는 바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멋진 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누군가에 대해 그는 며칠 동안 마음 가는 대로 상상할 수 있으리라. (30p)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57p)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자신을 보러 와 주기를, 자신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94p)
"나의 희생양. 나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나의 귀여운 시몽!"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끔찍한 쾌감을 경험했다. (13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