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 생각보다는 내적 독백에 가깝다. 질서가 전혀 없고 거의 바로 잊어버릴 정도로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도 많지만 구간 반복처럼 계속 똑같은 대화 시뮬레이션만 돌릴 때도 있다. 대체로 후회하는 순간들을 곱씹을 때 그렇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황이다.
내 생각들은 오랜 시간 꾸준히 나를 괴롭혔다. 되돌릴 수 없고 답이 없는 것을 자꾸 되새김질하는 것이 당연히 이로울 리 없다. 나는 생각을 멈추는 버튼을 갖거나 아니면 지난 일을 깔끔하게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당연히 없었다.
7년쯤 전이었던가. 매우 기분 나쁜 이별을 한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잠수였다. 여느 때처럼 엉엉 울었다. 한 30초쯤 울었을까. 갑자기 심장박동이 차분해지더니 천년의 이상형도 아닌데다가 이미 차인 상황에 울어서 에너지까지 소모하는 것이 너무나 비효율적이며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눈물이 뚝 그쳤고 전화번호를 바꾼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처음으로 생각과 감정에 빠져들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 첫 직장에 들어갔다. 회사 내 트러블,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에 대한 생각이 24시간을 뺏어갔다. 당시 남자친구는 매우 단순하고 안정적인 성격이었다. 내가 복잡한 생각을 늘어놓으면 전혀 이해 못 한 표정으로 “솔이 예쁘다, 솔이가 좋아하는 파스타 먹자” 같은 1차원적인 말이 돌아왔다.
처음엔 답답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복잡한 대화는 어려워도 늘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나를 살폈다. 그 마음 덕분에 외로움은 금세 걷혔고, 단순화된 일상과 단순한 최측근이 더해지니 어느새 나도 그런 대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사는 게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복잡하고 답을 찾기 어려운 생각이나 철학적 질문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출근 하기 싫다.’, ‘퇴근 하고 싶다.’, ’뭐 먹지?’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자각하고 나니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는 분명히 복잡하고 모호한 생각 뭉치를 달고 살았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그런 것들이 사라진 지금의 나도 나인지 수십 번 자문했다. 결국 나는 다시 복잡해지고 싶었다. 다시 시끄럽고 답답하고 괴로워지더라도 조금 더 구체적인 세상을 사는 내가 나인 것 같았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에 깊게 빠지게 하는 음악, 영화, 책을 많이 접했다. 일부러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머릿속은 금세 다시 시끄럽고 붐비게 되었다. 생각 버튼을 때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능력은 없다.
그래도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경험 덕분에 삶을 섬세하게 느끼는 즐거움이 특권이라고 느끼게 됐다. 아무래도 나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